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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Dec 19. 2022

내가 사랑하는 어린이

어린이라는 세계

나는 어린이에게 가장 좋은 찻잔과 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접시를 꺼내어 음식을 담아 준다.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는 이 책의 문장을 믿기 때문이다. 때로 귀한 접시가 깨질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하고 생각하려 애쓴다. 어린이들은 늘 조심한다. 다만 서툴러서 쏟고 깨고 할 뿐.

 어린이는 우리 집의 귀한 존재이기에, 항상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어린이도 금방 알아차려서, ‘오늘은 새 컵을 꺼내 줬네? 엄마가 아끼는 거 아니야?’하고 물으며 내용물을 조심조심 마신다(때로 너무 조심하다 그릇을 깨뜨리는 실수를 할 때도 있다).


사랑스러운 어깨를 들썩이며 딸기우유를 마시는 우리 집 어린이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사랑하는 어린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자녀는 애초에 부모를 그렇게 닮지 않았다(89쪽).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과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경험이 뒤섞인 존재다(90쪽).

나도 기대도 걱정도 내 마음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날 닮은 부분을 찾으며 기뻐하다가 걱정하고, 안 닮은 부분 또한 기뻐하다 걱정한다. 어린이를 대할 때 어른으로서 취해야 할 태도는 어린이가 나와 정말 별개의 개인이며 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정중해지는 것이다. 어른에게 하지 않았을 법한 행동은 어린이에게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티브이를 거의 안 본다. 거기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싫어서인 부분도 있다. 세상엔 ‘정상 가족’뿐인 것 같고 넓은 집과 능력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며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어린이 직업 선호도 1위가 건물주라는 이야기는 어른들의 우려를 사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른들이 돌아보아야 한다. 예능에서 ‘갓물주’라며 건물을 가진 연예인을 우러러보는 장면을 수없이 보는 어린이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가장 외로운 어린이, 가장 외로운 사람을 기준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자식 서열에 대해서도 생각한 바가 있다.

인간이 태어난 순서로 서열을 자연스럽게 획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떤 이유로든 인간 사이에 서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열 문화를 습득하는 공간이 가정이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한다. 존댓말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는 나에게 존대한다. 나는 반말을 쓴다. 여기서 위계가 발생한다. 나는 되도록 집에서 아이와 상호 존대를 하려 노력하겠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데 필요한 감정 노동을 ‘아랫사람’ 몫으로 떠넘기고 싶지 않다.


어린이는 해방된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해방된 사람들답게 자유로운지, 안전한지, 평등한지, 권리를 알고 있으며 보장받고 있는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점검해야 한다. 그런 어린이날에 대해 좀 더 상상하고 실현해보고 싶다.



그리고, '멋진 열두 살'을 읽고 '멋진 서른일곱 살'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1. 내가 원하는 웹툰을 유료 결제해서 볼 수 있다.

2. 더 이상 부모님과 같이 안 살아도 된다.

3. 내가 원한다면 밤에 군것질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

4. 내가 사고 싶은 쓸데없는 것(만화책 등)을 누군가의 허락 없이 살 수 있다.

5. 합법적으로 주류를 사고 마실 수 있다.

6. 남자와 모텔에 가도 죄책감이 없을 수 있다.(지금은 남편 한정)

7. 피지컬에서 다소 밀리더라도 남과 싸울 수 있다.

8. 업무상 경력이 쌓여 일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다.


일단 생각나는 것은 여기까지다.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의무만 많고 즐거움은 조금이라 생각했는데. 시간 날 때마다 목록을 추가해보고 싶다.



아이의 진지함을 웃지 않고 받아들이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삶을 각자의 치열함으로 어린이도, 나도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문장을 다시금 이 책에서 받아 쓰고 내 맘이 그 맘이라 말하고 싶다.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아는 것이 저의 정말 큰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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