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현씨 Jan 05. 2023

손수건의 쓸모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영화 <인턴>에서, 20대 인턴이 70세의 시니어 인턴인 로버트 드 니로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손수건을 보자 이렇게 묻는다.

"손수건은 어디에 써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그러자 로버트 드 니로는 이렇게 답한다.

"필수품이야. 자네 세대가 이걸 모른다는 건 거의 범죄에 가까워.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이유는 빌려주기 위해서야."


이 영화가 개봉된 2015년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 대사에 별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대사 '여자가 울 때 손수건을 빌려주기 위해 가지고 다닌다'는 거여서 평소 잘 울지 않는 여성 1로서 더욱 공감이 안 됐다. 여자는 잘 울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케어해야 한다, 뭐 이런 편견을 강화하는 발언이군. 하지만 할아버지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모든 지식은 업데이트되(어야하)며 상황에 따라 다른 맥락으로 쓰일 수 있음에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특히 애 둘을 키우는 지금, 무자녀 시절 내가 갖고 있던 지식은 쓸모가 저 뒤로 물러나고 다른 종류의 지식이 대거 업데이트되는데 그중 하나가 손수건의 쓸모에 대한 거다.


지금 내 주머니에는 항상 손수건이 한 장 이상 들어있다. 내가 쓰는 건 아니다. 정말 빌려주기 위해서다.

하루에도 대여섯 번 눈물 콧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어른은 그렇게 울라고 해도 못 울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말고는 그렇게 발 구르며 우는 어른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어린이가 1명 이상 집에 상주하고 있다면 손수건은 필수품이 된다. 4면으로 나누어 접은 손수건의 1 사분면엔 첫째 콧물이, 2 사분면엔 둘째 콧물이, 3 사분면엔 첫째 눈물이, 4 사분면엔 둘째 눈물이 묻어 있다. 비염이 도래하는 환절기엔 손수건 한 장으로는 부족하다. 누런 콧물 허연 콧물이 수도꼭지에서 물 흐르듯 줄줄 나오기 때문에 비염 자식과 동거하는 양육자라면 쌍절곤처럼 손수건을 기본 2장 이상 장착하고 있어야 한다.

눈이 오고 나서는 수시로 더러운 눈을 만져 시커멓고 축축해진 손을 바지에 쓱 문질러 닦곤 해서 지들 주머니에도 한 장씩 손수건을 넣어 준다. 아. 찬바람 막는 용으로 목에도 한 장씩 매어야 한다. 그러면 가방에 한 장, 외투 양 주머니마다 한 장, 애 호주머니에 각각 1장, 목에 각각 1장, 차에도 한두 장 이런 식으로 도합 7장이 넘는 손수건이 항상 곁을 따라다니게 된다.

   

요즘 숲속현자 나티코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I may be wrong)]를 읽고 있는데, '아잔 자야사로'라는 큰 스님 이야기가 나온다.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최근 인간관계에서 겪는 갈등 때문에 경전이나 격언 같은 것의 도움을 찾아 헤매던 나는 눈이 번뜩 뜨여 대체 그 마법의 주문이 무엇인지 너무나 알고 싶다.

스님께서 말씀해주신 마법의 주문은 이렇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헐.

마법의 주문이긴 한데 보통 마법력으로는 쓰기가 어려운 주문, 진심으로 믿고 쓰기 어려운 주문이었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아니요, 당신이 틀릴 수 있습니다'.

경험칙에 의하면 내가 틀릴 때가 맞을 때보다 많고, 맞다고 강하게 우기고 싶을 때 오히려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다.


손수건만 해도 이 작은 것이 내 인생에 이토록 중요해질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아기 낳았을 때 '가제수건을 물티슈 쓰듯 쓰게 된다' 같은 말을 했을 때 '오바가 심하네'이런 생각을 했었던 자신을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순간들은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이 다가올 때 어김없이 부끄러워진다. '이건 진짜 맞다'라고 생각했던 것들 대부분 지금은 틀렸거나, 시대착오적이거나, 반만 맞거나 한다.


나는 거의 항상 틀립니다.

이렇게 어디 새겨놔야 하나.


마흔을 바라보는 유자식 여성의 포지션을 가진 지금은 두께별, 소재별, 크기별로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손수건을 다 갖고 싶다. 얼마 전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보드랍고 질 좋은 면으로 만들어져 잘 마르기까지 하는 손수건을 선물 받았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름다운 손수건을 언제든 주머니에서 척 꺼내 적재적소에 쓸 때의 기쁨을 전엔 정말 몰랐다.


하지만 삶의 모습이 달라지면 지금 내 생활에서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손수건도 어느새 쓸모를 잃고 뒤켠으로 물러날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나?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손수건을 보며 이 마음만 간직하려 한다.

 

나의 쓸모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으며 타인의 쓸모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생각은 언제든 바뀌며 틀릴 수 있다.


손수건을 볼 때마다 이 마음을 떠올린다면 다른 사람을 하릴없이 미워하는 일도, 오해하는 일도 조금쯤은 줄어들겠지.


정말 그러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사랑하는 어린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