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남이 오나전 부럽다

결국은 사랑 이야기 ㅡ <엑시트>

by 수현씨


22살 때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호주에 잠시 살 때 같은 방을 쓰던 언니의 전도로 한인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타국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진실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개인적인 믿음의 경험이 있기도 해서 지금까지 신앙의 길을 걷고 있다.

아무튼.


23살, 다니던 교회 대학부에서 단기 선교 여행을 준비했다. 라오스의 빈민 마을을 돌며 선교 물품을 나누어주고, 현지인 집에 방문하여 아이들을 돌봐주고, 사물놀이나 태권도, 워십 공연을 하며 마을 잔치를 열기도 하는 일정이었다. 현지에서 일정을 빈틈없이 수행하기 위해 각자 맡은 역할을 미리 연습했다. 새벽 6시에 모여 기도하고 태권도 연습. 저녁 5시에 모여 사물놀이 연습. 목요 예배 마치고 워십 및 연극 연습. 예산 정리. 선물 포장. 기부 물품 분류 등 할 일이 넘쳤다. 떠나기 한 달 전쯤부터는 거의 매일 모여 공연 연습하고 라오스 말 배우고 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었고, 선교팀 안에서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고 그랬다.


나는.

새벽 6시 준비팀에 열심히 나갔다. 다소 불순한 의도가 섞인 채로.


교회에 대학부실이 있었는데 구조가 좀 독특했다. 교회 옆 허름한 건물 2층을 올라가면 신발장이 있고, 그 앞에 작은 골방이 있고, 골방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좀 더 넓은 공간이 나오는 식이었다.

해도 뜨지 않아 깜깜한 1월의 새벽 5시 반. 기모 후드와 모자와 두꺼운 양말로 무장을 하고 나서서 차가운 공기를 뚫고 대학부실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하는 일은 신발장의 신발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어두컴컴한 신발장 앞에 서서 ‘그’ 신발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


까만색 르꼬끄 신발.


지금도 닭 모양 로고의 형태와 굽 높이, 운동화를 자주 놓던 위치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디를 가든지 시선을 끌었던 훤칠한 뒷모습, 쉰듯한 웃음소리, 말도 안 되게 웃겼던 개그 같은 것이 그 신발에도 묻어있는 것 같아서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지금도 1월이 되면 새벽 추운 날씨와 신발장 기억의 콜라보가 내 대뇌피질을 후려친다. 아련한 그리움. 신발장을 확인하고 대학부실 안으로 들어가 실존하는 그 사람 모습을 발견하기까지 심장이 터질 듯했던 두근거림이 스멀 스멀 고개를 든다. 이런 감정의 요동은 사실 지금 실존하는 그 사람과는 이제 아무런 관련이 없다. 과거의 조각,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나의 파편에 대한 그리움이다. 지금 누군가와 연애를 다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연애할 때의 설렘만 선택적으로 뽑아내어 취하는 것이다.

잠 안 오는 밤 좋아하는 사람 목소리가 너무나 듣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그 사람 미니홈피 배경음악을 무한 반복으로 들었던 나, 김광석을 좋아했던 그 사람 덕분에 김광석 노래를 모두 부를 수 있게 된 나, 별이 쏟아지는 강변을 마침내 단 둘이 걷게 되어, 그것도 손을 잡고 걷게 되어 정신이 혼미해졌던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리운 것이다.


엑시트를 보며 내가 몰입했던 지점은 그런 부분이었다.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재해를 겪으며 결국에는 남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그런 내용이 물론 엑시트의 정수겠지만.

내가 엑시트를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 다시 보게 되는 이유는 용남이가 의주를 너무 좋아해서 엄마 칠순 잔치를 말도 안 되게 먼 곳에 잡고, 여전히 의주가 너무 좋아서 말을 더듬고, 귀가 빨개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뷔페에서 남은 음식을 싸가려고 해서 쪽팔려하고 누나 등쌀에 밀려 트로트에 맞춰 춤을 추게 되는 와중에도 용남이는 열심히 의주를 좋아한다. 목숨을 걸고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의주를 열심히 열심히 좋아한다.


나는 영화를 보며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땠을까 감정 이입을 과하게 하는 편인데, 엑시트에서는 진심으로 용남이가 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독가스가 퍼지는 위기 상황에서, 길가던 모르는 아저씨 같은 사람과 남겨지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힘쓰고 애쓸 수 있는 기회를 얻다니. 나의 실패했던 수많은 연애들, 너무 더 좋아해서 결국 고백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랑들, 상사병에 걸린 듯 가슴이 뛰어 잠들지 못한 수많은 밤들,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그 사람 뒷모습을 눈으로 초조하게 좇았던 순간들이 밀려와 급기야는 용남이가 부러워졌다. 용남이는 결국 의주와 다시 만날 기회를 이 모든 상황을 통해 얻었고 호감까지 살 수 있었다.


어휴.

결국,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다른 인간을 탐험하며 깊은 친밀감을 맺어가는 설렘을 다시금 느끼고 싶은 거다.

그래서 영화에서 감독이나 주인공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 것이다.

한심하다고도 생각되지만.


아무튼 그래서 엑시트를 5번째 봤다.

이따가 용남이 육회 먹는 장면만 다시 돌려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