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속에서 다이빙하기

소리가 사라지고 나면-나의 문어 선생님

by 수현씨


깊은 물속에 들어가면 소리가 사라진다.

소리는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 손에 닿는 물결의 미끄러움, 앞사람의 공기 호흡기에서 나오는 기포의 뽀글뽀글한 촉감, 주로 시각에 의존하게 되는지라 예민해지고 다소 넓어진 시야.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화는 수신호로 대신한다. 공기통에 얼마나 공기가 남았는지 숫자를 손가락으로 표시하고, 멋진 장면을 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엄지와 검지로 오케이 모양을 만든다. 압력 평형이 안 맞아 괴로울 때는 위로 올라가자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들고, 컨디션이 좋아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있을 때는 엄지를 아래로 내린다. 그렇게 바닷속 암벽을 타고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다 보면.

다이빙 시계가 수중 50미터를 가리키고 있다.

더 내려가면 물이 너무 무거워진다. 숨은 얕아지고, 시야는 좁아진다. 바위 밑에 숨어 있는 큰 물고기들의 눈이 번뜩이며 나와 마주친다.

그리고, 압도적인 고요.

사방이 조용하다.

앞 사람은 깊은 물속에서 체력을 아끼려 최대한 천천히 발을 뻗었다 굽혔다 하며 앞으로 물살을 밀고 나아간다. 나는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려 애쓰며 팔을 뻗는다. 사방은 다정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위를 올려다보면 수면 위를 비추는 빛의 무더기가 아래로 내려오다 어느 순간 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빛 뭉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간다. 손전등 불빛 끝에 투명하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빛나기도 하는 산호초나, 뱃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새우, 이국적인 빛깔의 물고기들이 걸렸다 사라진다. 나는 천장이 높은 미술관에 온 관람객처럼 조용히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며 경이로운 시선으로 낯선 자연을 감상한다. 때로는 커다란 바다거북이 내 바로 옆에서 헤엄치고 있을 때도 있다. 호기심 많은 아네모네 피쉬가 손가락을 톡톡 칠 때도 있다. 정어리 떼에 휩싸여 좌우가 은빛 회오리로 가득 찰 때도 있다. 물 밑으로 내려감으로써 나는 자연의 극히 작은 일부이며, 이 세계의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속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나를 나름의 방식으로 용납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생태계에 내가 어떠한 도움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불청객을 물끄러미 지켜보아준다. 꼬리로 후려쳐서 물 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쳐다보아 준다. 그들의 고요 안에서 나는 무표정한 받아들임, 수용을 느낀다. 부러 어떠한 표정을 만들어 지어 보이지 않는 무심한 환대를 느낀다. 물 밖에서 온, 그들과 섞일 수 없는 생물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때로 받아들여준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문어와 깊은 유대를 맺기를 원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오래 살아온 크레이그 포스터는 자신의 직업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그래서 모든 작업을 놓고 매일같이 케이프타운의 웨스턴 심해로 들어간다. 영상에서는 불규칙한 파도 소리, 그 파도소리와 어울리는 첼로 소리, 모래가 까슬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밀려왔다 사라진다. 눈을 감고 소리만 들어볼 때도 있다. 크레이그가 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작은 물결 소리를 내며 잠수하는 소리, 물 밖에 몰아치는 불길한 폭풍우 소리를 듣는다. ‘폭풍의 곶’이라 불린다는 아프리카의 해변을 상상해본다. 최고 수위선보다 낮은 곳에 있다는 그의 방갈로에 바닷물이 들이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느끼려 애써본다. 바닷물의 차가운 철썩거림, 찝찔한 공기, 다른 소리가 사라지고 파도와 바람이 섞어치는 소리.

그리고 물 속에서 일렁이는 다시마숲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내 키를 넘는 파도를 두려움을 참고 헤쳐 나가면, 마침내 압도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물 속의 추위를 갈망하게 될 만큼의 풍경. 중력을 극복하고 날아가는 듯한 감각. 새로운 행성에 온 것만 같은, 가슴 설레는 낯섦이 그 안에 있다.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면, 크레이그가 마치 무중력상태를 날아다니는 듯한 장면이 계속해서 나온다. 나를 그 곳에 가져다 놓고 싶을 만큼 자유로운, 나를 잡아당기는 모든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런 모습들이 이어진다. 그런 과정 가운데 크레이그는 암컷 왜문어를 만나고, 이 두 생물종은 서로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문어의 깊은 지혜나 외계생물에 가까운 변신술에 대한 경이로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영상물을 계속해서 보게 되는 이유는 다른 세계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굳이 몇십 억을 들여 로켓을 타고 우주 밖으로 날아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낯설고 내가 사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내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물종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을 떠올린다. 현생에 치여 살아갈 이유를 잃을 때, 왜 더 살아야 할지 알 수 없고 막막해질 때 나는 눈을 감고 푸르고 검게 일렁이는 바다를 떠올린다. 상상의 잠수복을 걸치고, 상상의 공기통을 메고, 쇠추를 허리에 둘러 무게를 조절한 후 레귤레이터를 입에 물고 상상의 바다로 풍덩 뛰어든다. 내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공기를 빼고 내려간다. 사방은 조용하며 나의 몸은 자유롭다. 누구도 나에게 눈 흘기지 않는 깊고 다정한 어둠이 내 몸을 감싼다. 조잡하게 뛰던 심장 박동은 조금씩 가라앉고 숨을 고르게 쉬게 된다. 나는, 다른 세계로 점프하여 나아간다.

삶이 너무 크고 무겁고 버겁게 느껴질 때 이런 상상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사실 나는 이 세상에서 잠시밖에 머물지 않는 존재이며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다. 책을 읽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모두 현실을 떠나 낯선 세계의 문을 열 열쇠를 가져오기 위한 수단이다. 현생은 나에게 지나치게 뜨겁고 과도하게 날카롭다. 예민해진 신경을 무디게 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내가 나라는 게 너무 초라해서 견디기 힘들 때

일단 눈을 감는다.

그리고 고요하고 깊은 물 속을 상상한다.

서서히 중력이 옅어지고, 숨은 깊어진다.

더 깊이 다이빙해 들어간다.


바깥은 폭풍우가 치더라도 물밑은 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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