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상상한다.
상상 속의 나는 저녁 상에 무엇을 차려야 할지, 큰 애 몸에 난 두드러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오늘 넌 빨래가 마르려면 창문을 열어 두었어야 하지 않았는지 생각하지 않고 당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
반복되는 내 안의 시끄러운 소리의 볼륨을 줄이고 당신의 눈을 쳐다보고, 당신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아차리려 노력한다.
당신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려 애쓴다. 당신이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무엇인지, 하루를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당신의 눈이 먼 곳을 바라볼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려 애쓴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일상에 지나치게 집중되어있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중간중간 그릇을 정리하기도 하고,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어 달라 떼쓰는 둘째를 안아 들고 어르기도 하며 당신의 이야기는 배경 음악처럼 듣는다. 당신은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하고, 오르거나 떨어진 주식 이야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던 캠핑카가 당근 마켓에 올라왔다는 이야기도 한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만 당신을 보지는 않는다. 당신도 나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어느 결에라도 듣고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하는 것일 거다. 나는 듣고 있지만 듣고 있지 않다. 당신의 이야기는 내 귀에 담기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에 대해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 당신이 주말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캠핑인지, 직장 동료의 어떤 행동이 당신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지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는다.
당신과 나의 관계는 어딘가 비어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고서야 그것을 알아차린다.
지금까지 나는 그 빈 틈을 메우려 노력했음을 깨닫는다.
아침 요가도, 독서도, 청소도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부재를 메우기 위함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당신을 잘 알지 못한다. 안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당신의 아주 일부분, 그것도 당신 껍질의 한 조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더 이상 같이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은 건어물을 좋아하고, 야밤에 먹는 핫도그를 좋아하고, 불판에 구운 삼겹살을 좋아한다.
나는 당신이 그런 음식을 먹자고 할 때마다 냄새가 싫다고 거절하고, 야식은 먹지 않는다며 거절하고, 채식을 하겠다며 거절했다. 당신은 이제 나에게 같이 뭔가를 먹자고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비닐 포장지를 보며 당신이 혼자 내가 잠든 밤에 부엌으로 나와 무언가를 차려 먹었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나는 결혼하고 애를 낳고 살아가는 내 삶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결혼하여 애를 낳고 사는, 가부장 질서에 복종하는 삶의 형태를 용납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왕 가부장제에 편입되었으면 행복하고 안온한 삶을 살기라도 해야 했을 텐데, 전혀 그렇지 못한 일상의 고군분투가 나를 지치게 한다. 그래서, 당신에게까지 내 에너지가 가 닿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9년의 결혼 생활 동안 딱 한 번 당신과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 여행 갔을 때, 아마도 집에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까지 알아보고 당신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당신이 편지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아래 덧붙인다.
2020.1.3.
당신은 식당에서 내가 뭘 시킨다고 하면 비웃기부터 한다.
내가 시키는 것은 당신 기준에 이상하고 우스운 거다.
식당에서 내가 와인을 시키면, 당신은 내가 와인 좋아하는 것이 허세라 말한다.
베트남에서 사람들이 아기를 안고 오토바이를 운전해 많이들 다니는 것을 보고, 나도 오토바이 운전해서 다니고 싶다 하면 길치면서, 자전거도 못 타면서 무슨 소리 하냔다.
애들 둘 보라하고 빨래하러 가거나 씻으러 들어가면 애는 둘이 놀고 본인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 일정 짜느라 그렇단다. 일정 안 짜고 그냥 애랑 잘 놀아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애 둘 다 나한테만 매달린다. 그러면 또 당신은 첫째한테 엄마 밥도 못 먹게 하냐고 야단을 친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끼어들면 훈육하는데 왜 끼어드냐고 뭐라고 하고, 안 끼어들면 첫째가 상처받고 나한테 울며 온다.
애가 힘들어 보여도 안아주거나 애의 필요를 살피지 않는다.
애를 어른같이 대한다.
애의 욕구를 억누른다.
내 욕구도 그렇게 하고.
아까도 물놀이하고 나서 잠시 들어간 식당에서 제대로 기저귀를 안 입은 둘째가 식당 바닥에 다섯 번 쉬를 하고 응아까지 한 번 했다.
놀란 내가 황급히 응아를 휴지로 줍고 화장실에 가서 애를 씻기고 바닥을 닦는 동안, 본인은 먼저 엘리베이터 앞에 가서 잠이 와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첫째한테만 제자리에 있으라고 화를 내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인지를 하지 않는다.
육아에서 나는 항상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그 이상을 한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만큼만 딱 한다.
왜 애가 말을 안 듣는지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른다.
베트남에 와서도 나는 애만 본다.
이런 말들을 하면 내가 좋은 면은 못 보고, 예민하다고 한다.
애랑 아무것도 안 하면서 시간을 보낼 줄 모른다. 당신은 핸드폰만 보고 있다.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나는 몰래 이 글을 꺼내 몇 번이고 읽는다. 그러면서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날카롭게 벼리어 둔다. 내가 당신을 모르듯 당신도 나를 모른다. 그리고 어떤 부분은 서로가 모르기를 바라기도 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결혼 이야기>에서, 이혼 조정 중인 찰리가 니콜에게 ‘당신 머리 색깔이 바뀌었네’라고 말한다. 그러자 니콜은 이게 원래 내 머리 색이었다고 답한다. 그러자 찰리는 그랬냐고, 자기는 당신의 염색한 머리 색이 더 좋았고, 길이도 더 긴 것이 좋았다고 말한다.
당신은 내가 곱슬이 심한 것을 잘 모를 것이다.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4개월마다 스트레이트 펌을 해 왔다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다. 미용실에서 웬 돈을 계속 쓰냐며 뭐라고 하긴 했으니 어렴풋이 뭔가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했겠지만 4개월마다 내가 미용실에서 3시간 이상 앉아 10만 원씩 들여가며 곱슬인 내 머리를 일자가 되게 만들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 노력을 그만두기로 했다. 내 곱슬이 마구 자라 엉키게 두기로 했다. 며칠 전, 당신은 문득 나에게 머리가 왜 이렇게 웃기고 엉망이냐고, 파마를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니콜처럼, 이게 원래 내 머리라고 당신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면서 미워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이따금씩 찾아온다.
당신에게도 내 존재가 그럴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같이 살아가겠지만, 서로를 온전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온전히 당신과 둘이 앉아, 당신과 눈을 맞추며,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해 오롯이 말해 왔을 때 내가 그 이야기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또한 두렵다.
그래서.
혼자 있는 낮 시간, 나는 당신을 상상한다.
당신과의 대화를 상상한다.
구체적이고 세세한 부분까지 상상하며 연습해 본다. 당신이 할 이야기를, 당신이 나를 볼 때 지을 표정을, 당신이 말하면서 자세를 어떻게 고칠지 까지도 집중하여 상상해본다.
당신과 계속 살아가기를 오늘도 선택하였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없을 때, 당신을 보려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