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0일 오전 1시 6분 50초..
아기의 온갖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모습은 바로 웃거나 미소 짓는 얼굴이다. 그 얼굴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하는데 언제부턴가 아기가 내 표정을 따라 한다는 느낌이 종종 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내가 웃으면 아기도 웃고, 내가 찡그리면 아기가 어쩔 줄 몰라하며 인상을 쓴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굉장히 당혹스러웠는데, 사실 아기가 태어나서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하고 매일매일이 행복했지만 그와 비례해서 난생처음 해보는 육아가 정말 고되고 지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24시간 내내 밝게 웃는 표정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찰나의 눈짓조차 아기에게는 자극이 많이 되는지 어느 순간 내 표정을 복사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사진 찍을 때만큼은)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내가 웃으면 세상도 나를 향해 웃어 보이고, 울면 나 혼자 울게 된다'는 말 말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비록 사진 때문이었지만 일부러라도 자주 웃으려고 노력했더니 점점 더 기분이 좋아지고, 생활에 활기가 도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육아가 덜 힘들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명의 작은 인간이 나로 하여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걸 보는 건 생각보다 더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꼭 사진이 아니더라도 출산 이후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이 점점 더 행복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앞으로 기대되는 미래이다.
흔히들 임신과 출산이 너무 힘들고 위험하지만 정말 본게임은 육아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 힘든 것도 힘든 건데 내가 나 말고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점이 굉장한 부담이다. 물론 아기가 한 번씩 웃어줄 때마다 그 부담이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막상 앞으로의 일들을 헤쳐나가다 보면 나를 채찍질하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얼마나 더 걱정이 많을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부모의 무게감이 이런 것인가. 한낱 1시간 뒤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하는데 나 외에 또 한 명을 1년, 10년 그 보다 더 뒤의 일까지 가늠해 보며 살아야 한다니 너무하다. 단순히 돈이 많으면 해결이 된다거나 내가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낳았으면 수월했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육아에 정답이 없는 것 같아 너무 무섭다. 엄마는 내가 아기였을 때 나를 돌보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