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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Mar 30. 2024

부탁 이렇게 거절했더니..

살다 보면 거절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런데 생각보다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거절해야 하는 내 입장보다 거절당하는 상대방의 입장을 더 고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면 상대와의 관계가 더 틀어질 수도 있다. 상대방은 부탁을 들어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머뭇거림은 무언의 승낙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소통을 다루는 책들에 거절하는 방법이 빠지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거절하는 방법을 단계별로 구분하는데 첫 번째는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공감과 입장을 이해했다는 표현이다. 거기에 아쉬움 또는 거절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면 좋다고 한다. '나는 적어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아! 이 사람이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만약, 여기서 제대로 듣지도 않고 거절부터 한다면 상대는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안돼, 나 돈 없어' 또는 '나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니 부탁을 들어주기 싫어'로 들릴 수도 있다. 사람은 늘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유 없는 거절은 '들어주기 싫은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지금은 안 되지만 다음엔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또는 '나는 안 되지만 00 이는 오늘 시간이 괜찮다고 하던데 물어볼래?'등의 대안을 제시해 주게 되면 상대방은 부탁을 거절당했지만 자신에 대한 배려를 느끼게 되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 그중 '돈거래 문제', '집주인과 계약 문제' 등 민사 관련 문제에 대한 도움을 청하는 일이 가장 많다. 경찰관은 민사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아마 문의하는 이들도 알고도 묻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답답한데 도움을 청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동료들이 "그건 경찰관이 관여할 수 없습니다." 또는 "안됩니다."라고 단호하게 답변한다. 나도 그랬다. '할 수 없는 일이니 할 수 없다'라고 말할 도리밖에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하지만, 소통 공부를 하고 난 후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대로 적용해 봤다.

 

파출소 내부 근무 중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 민사소송에 휘말렸고, 내일이 재판인데 연락이 안 된다, 내일 나가지 않으면 손해가 크다'면서 경찰관이 연락을 해서 재판 장소와 시간을 좀 알아봐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답답한지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고 내용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가만히 듣던 나는 그에게 이와 같은 순서로 말했다.

첫번 째, 먼저 그 사람의 현 상황에 대해 충분히 알아들었고, 그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두번 째. 하지만, 경찰관은 민사에 관여할 수 없어 도움을 드릴 수가 없음을 명확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도와드릴 수 없지만, 그 사람과 친한 사람 또는 가족을 통해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이렇게 말하자, 그는 목소리가 처음보다 차분해졌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그 후 그에게는 더 이상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마 내가 말한 방법으로 해결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탁하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 무조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름에 물을 붓는 격이다. 그들이 여유를 가지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현명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몸에 익히면 거절하고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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