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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오랜만의 파출소 근무에 대한 두려움

by 오박사

경찰은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 인사발령이 있다. 상반기는 정기 인사 발령이고 하반기는 필요한 보직이 발생하거나 정년퇴직 등의 결원이 발생했을 때 인원을 보충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발령은 경찰서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경찰서에서 파출소로,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파출소에서 다른 파출소로 이렇게 나뉜다.


나는 2003년 경찰이 된 후 21년 동안 경찰서 근무 16년 파출소 근무 5년의 비율로 거의 경찰서 내근 근무를 맡아해 왔고, 회사로 치면 현장직보다는 사무직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 보니 현장의 일을 배울 시간이 거의 없었고, 언제 나갈지 모를 현장에 대한 생소함과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언젠간 나가야 할 것을 알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은 더 커져갔다. 그 두려움 속엔 신임순경보다 업무를 더 모른다는 부끄러움도 숨어 있었다.


피하고 싶은 일은 시간이 좀 늦어질 뿐이지만 반드시 오기 마련인 듯, 2024년 상반기 발령 때 6년간의 경찰서 생활을 청산하고 파출소로 나가야 했다. 장기 근무자들을 순환시키기 위한 제도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나가게 된 것이다. 발령을 한 달 정도 남기고 멘붕에 빠졌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후배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진 않을까?', '야간 근무를 해낼 수 있을까?', '다치진 않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우습게도 마음 다른 곳 한편에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도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바로 근무체계 때문이다. 예전 경찰서 들어오기 전엔 3조 2교대(주주주야비야비야비) 근무를 했었다. 3조 2교대 근무는 매일 출근하는 느낌 때문에 상당히 피곤하다. 하지만, 근무체계가 4조 2교대(주야휴비)로 바뀌었다. 야간 근무를 하고 나면 이틀을 쉴 수 있어서 직원들이 선호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궁금했다. 또 '요즘 현장엔 어떤 일들이 있을까?' 하는 맘에도 설렜다. 그렇게 상반된 마음을 안고 결국 중앙지구대로 발령을 받았다.


중앙지구대는 1년 중 신고가 가장 많은 곳이다. 바쁘기도 하고 사건사고도 많아서 일을 빨리 배우지 않으면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칠 거라 생각했다. 그전에 '4개 팀 중 어떤 팀에 속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예전 함께 근무했던 팀장님이 계시는 2팀에 가고 싶었지만, 나 말고도 그 팀을 원하는 사람이 또 있어서 어떻게 될지 몰랐다. 다른 팀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왕이면 그 팀장님과 함께 근무하고 싶었다. 발령 다음 날 집에서 쉬고 있는데 팀이 정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원하는 팀에 배정되었다.


우리 팀은 팀장님, 내 위의 선임 경위 두 명, 나, 내 아래로 경사 한 명, 순경 한 명 총 6명으로 구성되었다. 멤버 한 명 한 명이 좋은 사람이었고 일도 잘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든든했다. 나만 잘하면 되는 거였다. 신고가 들어오면 될 수 있음 내가 먼저 출동했고, 보고서를 쳐야 할 때면 내가 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달려들다 보니 빨리 일을 배워나갔다.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게 되었고, 팀원들과도 잘 어울렸다. 오랜만에 맛본 야간 근무는 힘들었지만, 서서히 적응되어 갔다. 야간 근무 들어가기 전 얼마를 쉬어야 하는지, 야간근무 퇴근 후 몇 시간을 자야 덜 피곤한지 등 요령이 생겼다. 팀원들 덕분에 적응이 더 수월했다. 사건이 생기면 모두 한 몸처럼 움직였고 그 중심엔 팀장님이 있었다. 팀원에게 일이 생기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모두 배려를 해주었고 오히려 그런 모습이 팀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오랜 경찰서 생활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역시 뭐든 부딪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겁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으면 불안이 설렘으로 바뀐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엇을 배우게 될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하면 출근하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기대했던 4조 2교대 근무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맘에 들었다. 쉴 시간도 충분했으며, 여유 시간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고 휴가도 편히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랜만의 파출소 근무는 내 인생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것들은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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