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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군사관학교 최종합격 그러나..

by 오박사

해군 사관학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아무도 내가 합격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모두 놀랐다. "네가 사관학교 시험 치러 가면 나도 가겠다"라고 한 녀석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녀석들을 보고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물론 녀석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소심한 복수였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한 달 뒤 치러질 체력시험이 걱정되었다. 사관학교는 필기, 체력, 면접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당시 학생들의 체력을 측정하는 체력장이 있었는데 특등급~5등급까지 6개 등급 중 5등급을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체력이 약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 꼴찌는 늘 내 몫이었다. 필기만 합격하면 끝이라 여겼는데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울고 싶었다.


체력시험 최소 합격기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턱걸이 1개, 팔 굽혀펴기 30개, 윗몸일으키기 25개, 1000미터 달리기 6분 30초 정도였다. '에게? 겨우 이 정도라고?' 생각하겠지만 팔굽혀펴기를 빼고 세 종목 기준 미달이었다. 턱걸이는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팔 한번 못 당겨보고 용만 쓰다 손을 놓기 바빴다. 체력 시험까지 남은 기한은 한 달. '어떻게든 한 개는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교 후 홀로 운동장에 남아 매일 운동장 10바퀴씩 돌았다. 운동장을 돈 다음 숨을 고르고 철봉 앞에 섰다. 철봉은 도저히 뚫리지 않을 벽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매달려 끙끙거려도 팔이 당겨지지 않았다.


체력시험 2주 전 여전히 턱걸이 한 개는 실패했다. 턱걸이 한 개를 못해 떨어졌다고 하면 너무 부끄러울 거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다 갑자기 해결책이 떠올랐다. '점프한 반동으로 하나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바로 시도해 봤다. '엇! 된다.' 머리가 철봉 위로 쑥 올라갔다. 그리곤 바로 손을 놓았다. 희망이 생겼다. 남은 기간 동안 점프 반동이 좀 더 능숙해졌고 다른 종목도 기준 점수는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체력시험 당일 부모님과 함께 진해에 있는 해군 사관학교로 향했다. 나보다 부모님이 더 긴장한 듯 보였다. 부모님도 내 체력수준을 알지만 내가 혹시나 긴장할까 싶어 아무 말씀을 하진 않으셨다. 300명의 인원이 각 종목별 조를 나눠 시험을 치렀다. 우리 조 첫 번째 시험은 하필 턱걸이였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하며 손에 땀이 맺혔다. 철봉 4개가 보였고 우린 그 앞에 줄지어 앉았다. 조교가 시범을 보였다. '턱걸이를 그냥 하면 되지 웬 시범?' 시범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철봉 밑에 발받침이 있는데 그 위에 발을 올린 후 받침을 빼면 매달린 상태에서 시작해야 된다고 했다. '망했다'라고 생각하며 순간 울뻔했다. 부모님과 친구들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철봉 4개에 한 사람씩 조교가 시범을 보인 대로 매달렸다. 제각각 '끙' 소리를 내며 힘을 줘 턱걸이를 시작했다. 턱걸이 한 개를 못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더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좀 덜했다. 그래도 떨어지면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았다. 내 번호가 호명되었고 철봉 앞에 섰다. 이미 마음을 내려놓았다. 될 대로 되라는 맘으로 매달렸고 “이 얏!” 소리를 지르며 힘을 줬다. 순간 내 머리가 철봉 위로 올라갔다. 깜짝 놀랐다. '이게 왜 된 거지?' 의아했다. 그리곤 그냥 손을 놓아버렸다. 목표는 한 개였으니 더 힘줄 마음도 없었다. 아직도 그날 어떻게 올라간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윗몸 일으키기와 팔굽혀 펴기도 겨우 기준을 넘겼다. 이제 남은 것은 1,000미터 달리기다. 턱걸이를 통과했다는 기쁨에 무엇을 해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1,000미터 달리기도 힘들긴 했지만 넘어질 듯 말 듯 휘청거리며 끝까지 뛰었다. 겨우 시간 내에 들어올 수 있었다. 모든 시험이 끝나자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가 휘청거렸다. 한 달간의 노력이 스쳐 지나갔다.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었지만 해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체력검정 일주일 뒤 면접시험을 치렀다. 예상 문제집을 달달 외웠다. 사관학교 면접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질문을 받고 답을 잘 모르겠으면 어설프게 답하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당당하게 큰 소리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군인 정신 때문이라고 했다. 4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3가지는 아는 거라 답했고, 나머지 하나는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필기, 체력, 면접을 모두 마치면 최종 심사를 받는다. 심사장은 해군 사관학교의 한 교실이었고 복도 양옆으로 면접까지 통과한 이들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렸다. 갑자기 복도 끝 쪽에서 “제독님 입장하십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하얀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복도 중앙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모자에 별 한 개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가 제독인 듯했다. 그들의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나도 빨리 저 옷을 입고 싶었다. 그들이 심사장으로 들어갔고 5분 뒤쯤 한 명씩 호명되었다. 교실에는 수험생이 앉는 의자가 있었고 맞은편에 제독과 심사관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의 맞은편에 앉으니 위압감이 엄청났다. 그들은 앞에 놓인 서류와 나를 번갈아 봤다. 그들의 매서운 눈빛에 맹수 앞에 놓인 먹이처럼 몸이 움츠러들었다. 제독이 나에게 근엄한 소리로 물었다. “아버지가 군인인가?”, "네 그렇습니다.", “군인의 자식이 턱걸이가 한 개가 뭔가?”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할 말이 없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던 그가 혀를 쯧쯧 차며 “합격”이라고 외쳤다.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합격이라는 말에 놀랐다.


최종 합격 통보 후 남은 건 피검사 결과뿐이었다. 해군은 장기간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B형 간염 등 전염성 있는 질병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피검사까지 했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 나왔다. 결과 용지를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귀하는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이기 때문에 불합격입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결과였기에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버진 내가 B형 간염이 있는 것을 알고 계셨는데 그것이 결격 사유가 되는 줄 몰랐다고 하셨다. 처음부터 오를 수도 없는 나무에 오르려고 그 노력을 한 거였다. 실망감보단 허무함이 더 컸다.


사관학교 불합격 통보 후 수능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그 해 대학은 포기해야 했다. 재수할 맘으로 학원을 알아봤다. 수능 점수는 200점 만점에 120점이었고 전문대 정도는 갈 수 있었다. 3군데 정도 원서를 넣었는데 추가 합격 제도로 인해 부산공업대(현재 부경대) 산업공학과에 합격했다. 1년을 다시 공부할 자신이 없었고 공부한다 해도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실력도 되지 않기에 입학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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