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 필기시험 합격. 그야말로 이변이었다. "네가 사관학교 시험을 치러 가면 나도 간다"라며 비웃던 녀석들의 동공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녀석들을 향해 승자의 미소를 날려주었다. 소심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한 복수였다.
하지만 합격의 달콤함은 찰나였고, 한 달 뒤 치러질 체력시험이라는 거대한 먹구름이 몰려왔다. 사관학교는 필기, 체력, 면접의 3관왕을 달성해야만 입학할 수 있는 곳이다. 당시 내 체력은 학창 시절 내내 6개 등급 중 밑바닥인 5등급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저질 체력'의 표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 꼴찌는 언제나 내 지정석이었다. 필기만 붙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다니, 하늘도 무심했다.
체력시험의 최소 합격 기준은 턱걸이 1개, 팔굽혀펴기 30개, 윗몸일으키기 25개, 1,000미터 달리기 6분 30초였다. 누군가는 '에게? 겨우 그거?'라며 코웃음을 치겠지만, 팔굽혀펴기를 제외한 모든 종목이 내겐 올림픽 출전 기준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턱걸이는 철봉에 매달려 용만 쓰다 툭 떨어지기 일쑤였다. 남은 시간은 단 한 달. 하교 후 매일 텅 빈 운동장에 남아 10바퀴를 뛰고 철봉 앞에 섰다. 하지만 철봉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 같았다.
시험 2주 전까지도 단 한 개를 당기지 못했다. ‘턱걸이 1개를 못해서 사관학교에서 떨어졌다’는 수치심만은 피하고 싶었다. 궁리 끝에 '점프하는 반동을 이용하면 하나쯤은 되지 않을까?' 하는 꼼수가 떠올랐다. 바로 시도해 보니, 웬걸! 턱이 철봉 위로 쑥 올라갔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운명의 체력시험 당일, 진해 해군사관학교로 향하는 길. 나보다 부모님의 얼굴에 긴장감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내 빈약한 체력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차마 아무 말씀도 못 하셨을 것이다. 300명의 지원자가 조를 나누어 시험을 치렀는데, 하필 우리 조의 첫 종목이 턱걸이였다.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손바닥엔 식은땀이 흥건해졌다. 그때, 조교가 앞으로 나와 시범을 보였다. '그냥 매달려서 당기면 되지 웬 시범?'이라며 바라보던 내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갔다. 철봉 밑 발받침에 올라간 뒤, 받침대를 치우면 완전히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데드행)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설명이었다. 꼼수로 준비한 '점프 반동'은 원천 봉쇄였다. '망했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그 자리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내 번호가 호명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철봉 밑에 섰다. 발받침이 빠지는 순간, 이미 마음은 반쯤 포기 상태였다. 하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이얏!" 기합과 함께 온몸의 힘을 쥐어짜 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 턱이 철봉 위를 넘어간 것이다. '어? 이게 왜 되지?' 스스로도 어리둥절했다. 목표는 오직 1개였기에 미련 없이 손을 놔버렸다. 그날 대체 어떤 초인적인 힘이 내 몸을 끌어올렸는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미스터리다.
턱걸이를 통과했다는 기적 같은 환희는 엄청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켰다.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를 턱걸이하듯 아슬아슬하게 통과했고, 마지막 1,000미터 달리기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다리가 풀리면서도 악으로 깡으로 뛰어 시간 내에 골인했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잔디밭에 널브러졌다.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의 체력이었지만, 내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자랑스러웠다.
일주일 뒤 이어진 면접시험. 사관학교 면접은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군인답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크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 패기 잇는 태도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나는 네 개의 질문 중 세 개를 무사히 넘기고, 마지막 질문에서 배운 대로 우렁차게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를 외쳤다.
모든 관문을 통과한 자들에게 허락된 마지막 최종 심사. 복도 끝에서 “제독님 입장하십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눈부시게 하얀 제복을 입은 장교들이 걸어왔다. 선두에 선 제독의 모자에는 영롱한 별 한 개가 빛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멋짐을 보는 순간, 나도 하루빨리 저 제복을 입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올랐다. 심사장에 들어가 제독과 심사관들 앞에 앉았다. 날카로운 맹수들 앞의 초식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내 서류를 훑어보던 제독이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네, 아버지가 군인이신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군인의 아들이 체력시험에서 턱걸이를 겨우 1개밖에 못 했단 말인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변명의 여지가 없어 모기만한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차던 제독의 입에서 뜻밖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합격."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순간이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 멋진 하얀 제복을 입을 일만 남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진짜 시련은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 숨어 있었다. 장기간 함정 생활을 해야 하는 해군의 특성상 전염성 질환을 확인하는 피검사가 마지막 절차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 뒤 날아온 결과지를 받아 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귀하는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이므로 불합격입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숨이 턱 막혔다. 아버지는 내가 보균자라는 사실은 아셨지만, 그것이 사관학교 결격 사유인 줄은 꿈에도 모르셨다고 했다. 애초부터 오를 수도 없는 나무를 향해 그토록 처절하게 발버둥 쳤던 것이다. 분노나 슬픔보다는, 온몸의 힘이 쫙 빠져나가는 헛헛함과 허무함이 밀려왔다.
사관학교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수능은 이미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해 제대로 된 대학 진학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200점 만점에 120점이라는 초라한 수능 성적표를 들고 재수를 고민하다가, 추가 합격 제도를 통해 간신히 부산공업대(현 부경대) 산업공학과에 원서를 넣었고 덜컥 합격했다. 다시 1년을 책상 앞에 앉아있을 자신도, 성적을 획기적으로 올릴 배짱도 없었던 나는 결국 그곳에 입학하기로 했다.
하얀 제복의 꿈은 그렇게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관학교라는 문이 굳게 닫히면서 떠밀리듯 선택했던 이 길이, 훗날 나를 '23년 차 베테랑 경찰'이라는 진짜 내 운명의 제복으로 안내하는 위대한 우회로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