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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Oct 07. 2024

62. 이 나이에 결혼식 사회를?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면 결혼식장에 갈 일이 줄어든다. 주례 선생님으로 초대받을 때가 되었다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나이에 결혼식 사회를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2003년 역전파출소에 근무할 때 봉사활동 온 여중생 친구가 있다. 녀석은 붙임성이 좋아서 경찰서와 파출소에 봉사활동을 지속하면서 여러 경찰관과 친분을 나눴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 결혼한다며 나에게 사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강의하는 것을 알고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회자는 신랑 지인들이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신랑과 논의가 된 사항인지 물었다. 신랑 지인 중 사회 볼 사람이 없고 주례 없는 결혼식이라 내 이야기를 하니 신랑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했다.     


첨엔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사회를 보냐?”며 거절했다. 돈 주고 사회를 사는 것보다 내가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말에 잠시 고민하다 제안을 수락했다. ‘강의 때처럼 하면 되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수락했다가 사회 순서를 검색해보곤 깜짝 놀랐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가 모든 것을 진행해야 했다. 즉, 사회자에 따라 그 결혼식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거였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개그맨 출신들이 사회자로 섭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재치있는 입담으로 결혼식을 축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담감이 밀려왔다. ‘괜히 수락했나’라는 후회와 ‘어떻게 해야 하지?’하는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이왕 맡은 거 제대로 해야지 싶어 정신을 다잡고 결혼식 사회 유튜브를 검색했다. 재미있는 영상이 많았다. 잘못 따라 했다가는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수 있으니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은 것만 몇 가지 메모했다.      


여러 가지 후보군을 추려냈고 그 중 최종 3가지를 추려냈다. 신랑 입장 시, 중반부, 마지막 행진 전 이벤트 하나 이렇게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을 입에 붙도록 연습했다.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도 유튜브를 시청하며 머릿속으로 상황을 계속 그렸다. 예식장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냥 식순만 읽어도 본전은 하는데 잘하고 싶은 마음에 고생이었다.    

  

예식장에 도착해 신랑, 신부와 인사를 나눈 후 사회자 자리로 가서 예식장 관계자와 식순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나, 둘 들어오는 하객을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며 다리가 떨렸다. 수백 명 앞에서 강의할 때도 그렇게 떨어본 적은 없었다. 속으로 계속 ‘나는 잘 할 수 있다’를 외쳤다. 하객이 모두 자리에 앉고 사회자 소개를 시작으로 예식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양가 어머님의 화촉이 끝난 후 신랑 입장 순서가 되었다. 준비한 말을 능청스럽게 뱉었고 예식장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때부터 용기가 생겼다. ‘어라 이게 되는구나!’ 싶었고 다음부턴 물 흐르듯이 진행했다. 마지막 이벤트 시간이 되었을 때 또다시 긴장되었지만 ‘이게 마지막이다’ 생각하니 강의할 때처럼 이벤트를 진행했다. 또다시 예식장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신랑, 신부의 퇴장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했다.   

   

30분가량의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사회자 석을 벗어날 때 등엔 땀이 흥건했다. 후련했지만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저녁에 녀석이 전화했다. 참석한 사람들이 결혼식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고 고마워했다. 다행이었다. 나도 녀석한테 결혼 축하 인사와 함께 좋은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했다. 지나고 나니 즐거운 경험이었다. 새로운 경험은 어려움도 따르지만 즐거움이 더 큰 것 같다. ‘결혼식 사회 아르바이트나 해 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이제 살만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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