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가다 난파를 당해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배에서 떨어져 나온 물건은 가족사진, 기타, 휴대폰, 낚시도구, 칼, 파이어스틸 등 50여 가지. 이 중 20가지만 선택해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 것인가.
대부분은 망설임 없이 생존 도구를 고른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주어진다. 해적이 나타나 5가지를 내놓으라고 한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잠시 후, 해적은 다시 나타나 또다시 5가지를 요구한다. 그렇게 선택과 포기를 반복한 끝에, 내 손에 남은 것은 단 10가지의 물건이다.
20여 명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약 80%는 끝까지 파이어스틸과 같은 생존에 필수적인 도구만을 남겼다. 반면 나머지 20%는 가족사진, 연필, 애완동물, 기타처럼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물건을 선택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자 돌아온 답은 비슷했다. “언젠가 구조될지도 모르니, 그동안 가족을 떠올리며 버티고 싶어서.”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
인간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가장 먼저 먹을 것과 잠자리를 떠올린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확보하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먹고 잘 수만 있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인간은 생각보다 외로움에 취약한 존재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은 배구공에 얼굴을 그리고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상의 친구를 만든다. 그는 윌슨과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랬고, 결국 그 존재 덕분에 구조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단순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는 긴 시간을 혼자 견뎌내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재난영화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우리가 어디까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를 시험한다. 생존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다움을 포기한 뒤 찾아오는 불안과 공허,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우리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진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챙길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으로 남기 위해 무엇을 끝까지 붙잡을 것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