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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는 왜 의심하지 못했을까?

by 오박사

2001년 4학년 2학기.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에 성공했고, 나도 교수님의 추천서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잘되겠지’ 했던 일이 틀어졌고, 준비할 겨를도 없이 취업 시즌은 지나가버렸다. 뭐라도 해야 했지만,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지?’ 화면을 보니 군대 고참이었다. 제대한 지 3년쯤 되었지만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처음엔 안부 인사를 나눴고, 자연스레 군대 시절 이야기도 오갔다. 그러다 그가 취업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삼촌이 대기업 00물산의 부장인데, 이번에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삼촌에게 잘 해주겠다고, 이력서, 성적증명서, 자격증 사본, 자기소개서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정말 간절하면 하늘이 돕는다더니 이런 걸 말하는구나.'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너무 뛰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가 요청한 서류를 준비해 다음 날 바로 메일로 보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벨소리만 울려도 심장이 철렁였지만, 정작 내가 기다리던 전화는 아니었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마침내 그의 전화가 왔다. 삼촌이 내 스펙을 보고 별도 면접 없이 합격자 명단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그리고 2주 뒤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그동안 쌓였던 긴장이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결국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기쁜 소식은 곧장 부모님께 전했다. 부모님도 무척 기뻐하시며 내일 당장 출근복을 사러 가자고 하셨다. 다음 날에는 친구들과 교수님께도 취직 소식을 알렸다.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어머니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양복 두 벌, 가방, 구두 등 필요한 것들을 마련했다. 출근지가 서울이라 머물 곳이 없었지만, 고참이 당분간 자신의 집에서 지내도 된다고 해주어 안심했다. 출발 전날, 여자친구와 부모님이 함께 송별회를 열어주었다. 그 다음 날인 일요일, 김해공항에서 부모님과 작별하고 생애 두 번째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은 낯설었고, 부모님을 떠나 혼자 어디 가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불안했다.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계속 그렇게 다짐했다.


서울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고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결혼식장에 있다며 한 시간 뒤에 도착하겠다고 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다시 전화했고, 그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갑자기 지난 며칠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왜 그동안 아무 의심도 안 했을까?’ ‘다단계? 아니면 취업 사기?’


무서운 상상이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나를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항 화장실로 급히 몸을 피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셨는지 서울에 있는 사촌형에게 연락하셨다. 사촌형은 곧장 공항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그때 다시 고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사촌형과 함께 간다고 말했고,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그러자고 했다. 사촌형과 함께 고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셋이 함께 식사를 했다. 고참은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사촌형은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재우고 내일 회사로 보낼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건 곤란하다. 꼭 나와 함께 가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 집요한 태도를 보자 확신이 들었다. ‘이건 다단계다.’


결국 사촌형의 집에서 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고참과는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직접 00물산에 전화했다. 그의 삼촌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대자 **“그런 분은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제야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정말 다단계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토록 어이없이 속았을까?’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부모님과 친구들 앞에 뭐라고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편으로는 그가 나를 다시 찾아올까 두려움도 엄습했다.


급히 짐을 싸서 서울역으로 향했다. 사촌형은 출근 중이었고, 나는 혼자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혹시 누가 따라오는 건 아닌지 내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20여 분은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는 그때까지도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 결국 기차를 타기 직전, 마지막으로 전화를 받아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고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안함보다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자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부모님께 모든 사실을 말씀드렸지만, 의외로 크게 나무라시지 않으셨다. 잡혀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오히려 안도하셨다. 친구들에겐 “조건이 맞지 않아서 포기했다”고 둘러댔고, 다행히 믿는 눈치였다.


아무 일 없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다행이었지만, 다시 취업이라는 문턱에 서려니 앞이 막막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며칠 동안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경찰 시험 한번 준비해보지 않을래? 내가 학원 보내줄게.” 선뜻 대답은 안 나왔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결국 아버지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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