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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월드컵, 나를 경찰로 만들다

by 오박사

2001년 12월, 4학년 2학기 말. 취업 사기를 당할 뻔한 일을 계기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아버지께서 경찰 시험을 권유하셨고, 나도 마음을 정했다. 바로 경찰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경찰공무원 시험은 형법, 형사소송법, 경찰학개론, 영어, 수사 총 다섯 과목이었다.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너무나 생소하고 어려워 독학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경찰 전문 학원을 찾았다. 양정과 서면에 학원이 있었는데, 집에서 가까운 양정 학원에 등록했다.


당시 공무원 시험의 인기는 매우 높았고, 평균 경쟁률이 38:1에 달했다. 학원은 수강생들로 가득했고, 그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이미 자리를 잡고 공부에 몰두한 이들이 눈에 띄었다. 저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빈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니 책에는 형형색색 볼펜으로 칠한 흔적이 가득했고, 책은 너덜너덜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3년 이상 공부한 수험생들이었다. 첫 수업 때는 강의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완전히 멘붕이었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었기에 직진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한 과목의 교재 한 권을 끝내는 데 두 달이 걸렸다. 2002년에는 경찰 시험이 5월과 11월, 총 두 번 예정되어 있었다. 12월부터 1월까지 강의를 듣고 1회독을 마친 후, 남은 4개월 동안 두 번 더 반복해서 공부할 계획이었다. 수험생 생활은 고3 때보다 더 힘들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학원 자습실에 자리를 잡고 공부하다가 수업을 듣고, 다시 자습실로 돌아가는 하루가 반복됐다. 밤 10시에 집에 돌아와서도 다시 책을 펴야 했다. 학원 자습실은 100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사람 소리와 소음으로 집중하기 어려웠다. 공부는 하루 종일 했지만,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조용한 공부 장소를 찾아 나섰다. 마침 부산교대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는 대학 친구의 말을 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친구 말대로 도서관은 조용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집과도 가까워 마음에 들었다. 그 후로는 아침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수업이 있는 날만 학원에 갔다. 2월부터는 학원도 끊었다. 이미 수업은 다 들었고, 독학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부가 잘 되는 날에는 3시간 넘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몰입하기도 했지만, 매일 그런 건 아니었다. 집중이 되지 않는 날엔 책을 덮고 영화관으로 향하거나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보다 머리를 식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피곤할 때는 집에 일찍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잔소리 때문에 늦게까지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몰래 사우나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5월 첫 시험일이 다가왔다. 목표였던 ‘세 번 회독’은 이루지 못했지만,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불합격.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좌절하지 않고 다음 날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6월 중순, 모의고사 문제지를 받기 위해 학원에 들렀다. 그런데 예전과는 달리 학원이 썰렁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문이었다. 전국이 축구 열기로 들썩였고, 수험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오래 준비한 수험생들은 생계를 위해 8월까지 아르바이트를 나가느라 학원은 더 조용해졌다.


그날, 우연히 학원 게시판에서 공고문 하나를 발견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갔다.
“경찰 채용 공고 – 7월 시험 실시” '뭐지? 시험은 11월 아니었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상치 못했던 7월 시험이 추가된 것이었다. 퇴직자가 많이 발생하면서 계획에 없던 추가 채용이 결정된 것이었다. ‘이건 기회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정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7월 시험 경쟁률은 17:1로 확 줄어 있었다.


시험 결과는 좋았다. 예상 점수도 높았고, 결과도 합격이었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었기에, 당사자 본인이 전화를 걸어야만 합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화를 걸자 들려온 한마디.
“000번, 합격입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 달 뒤 체력시험과 면접도 무사히 통과했다. 그렇게 해서 8개월간의 수험 생활은 끝이 났다. 월드컵 특수와 퇴직자 덕분에, 나는 운 좋게 경찰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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