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발표 일주일 뒤, 나는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했다. 학교는 충북 충주에 있었고, 부산에서 3시간 4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부모님과 함께 전날 충주로 올라가 학교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숙박한 뒤, 다음 날 아침 정문에서 작별했다.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내가 진짜 경찰이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났고, 설렘과 두려움,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다른 합격자들과 함께 짐을 끌며 오르막길을 오르는 장면은 마치 군 입대 첫날을 연상케 했다. 500미터쯤 올라가자, 빨간 모자를 푹 눌러쓴 교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6개월 동안 우리를 괴롭히… 아니, 지도할 지도 교수들이었다. 매서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에 자연스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들은 곧장 우리를 생활관으로 인도했다.
생활관 구조는 군대와 비슷했다. 양쪽으로 침구가 9개씩 배치되어 있고, 벽에는 개인 짐을 넣는 관물대가 있었다. 그곳에서 앞으로의 훈련과 수업을 함께할 동기들과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경찰학교의 교육 과정은 총 6개월이며, 이 중 한 달은 현장 실습 기간이다. 첫 일주일은 체력 훈련으로 시작됐는데, 말이 훈련이지 실상은 빨간 모자 교관들의 스파르타식 교육이었다. 2주 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실무 교육이 시작됐다. 형법, 수사 같은 이론 수업과 운전 실습, 음주 단속, 무도 수업 등 실기 중심 수업도 병행되었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수업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과학수사 실습이었다. 실제 사건 현장과 유사하게 꾸며진 공간에서 단서를 찾는 훈련이었는데, 시체 모형과 핏자국이 너무 리얼해 섬뜩할 정도였다. ‘실제 현장에 나가면 이런 것도 마주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음주측정 실습이었다. 지원자를 모집해 실제로 소주를 한 잔, 세 잔, 다섯 잔씩 마시게 한 후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는 수업이었다. 같은 술을 마셔도 사람마다 수치가 다르게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앞다퉈 자원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잊히지 않는다.
무도 수업은 태권도, 합기도, 검도 중 하나를 선택해 수강하게 되어 있었고, 경찰학교를 졸업하려면 무도 1단 자격이 필수였다. 무도 사범님들이 자신을 소개하는데,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격파 시범, 화려한 개인기 등을 보여주며 각자의 종목을 홍보했다. 나는 합기도의 손기술에 매료되어 합기도를 선택했다. 이미 단증이 있는 사람은 면제되었지만, 나는 처음이었기에 시험 날 많이 긴장했다. 낙법이 어색해 떨어질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합격해 1단을 취득할 수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수업이 없어서 외출이나 외박이 허용되었다. 수백 명의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만큼, 학교에서는 지역별로 버스를 대절해주었다. 물론 요금은 자비였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학교 운동장은 각지로 향하는 버스로 가득 찼다. 단 하루만 자고 오는 것이었지만, 집에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기들의 얼굴은 들떠 있었다.
충주는 수안보 온천이 유명한데, 집에 가지 않는 동기들은 온천에 가거나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매주 몇 시간씩 버스를 타는 것도 부담스러워 충주 시내 모텔을 잡고 쉬는 경우도 많았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주말, 생활실 동기들과 충주호 근처 펜션에서 먹었던 통돼지 바비큐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6개월 중 한 달은 희망 지역으로 실습을 나갔다. 나는 두 명의 동기와 함께 부산 북부경찰서로 배정받았다. 북부경찰서는 덕천, 구포, 화명, 만덕, 금곡동을 관할했는데, 우리는 만덕3동 파출소로 갔다. 다른 지역은 사건이 많아 실습생이 위험할 수 있다며 비교적 조용한 만덕으로 배치한 것이라고 했다. 솔직히 실망했다. 사건이 많은 곳에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덕은 주택가가 밀집된 지역으로 술집도 거의 없어서 신고가 많지 않았다. 실습이 끝난 후 동기들이 각자 겪은 에피소드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 나는 말할 거리가 거의 없었다.
교육의 마지막 관문은 졸업 전 시험이었다. 시험 점수와 전체 교육 성적을 합산해 최종 등수를 매긴 뒤, 그 순위에 따라 희망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500명 중 내 전체 등수는 250등, 경남 지역 지원자 30명 중에선 17등으로 중간쯤이었다. 나는 부산에서 가까운 경남경찰청을 지원했고, 그 산하 경찰서 중에서 양산과 김해가 후보지였다. 그러나 김해는 배정 인원이 없었고, 양산은 단 2명만 배정되었다. 아쉽게도 나보다 높은 등수의 두 명이 이미 양산을 지원한 상태였다.
고민 끝에 눈에 띈 곳이 밀양경찰서였다. 아버지의 고향이 경북 구미여서 명절 때마다 기차를 타고 지나쳤던 곳이기도 하다. 낯설지만 어딘가 친근했던 밀양을 1지망으로, 양산을 2지망으로 적어냈다. 그리고 졸업 하루 전, 최종 발령지가 발표되었다. 내 이름 옆에는 **‘밀양경찰서’**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