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학교를 졸업한 지 일주일 뒤, 첫 발령 신고를 하게 되었다. 차가 없던 나는 기차를 타고 밀양역에 도착한 후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역에서 경찰서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정문 앞에 도착하자 의경이 나를 막아섰다. 경찰이 아닌 의무복무 중인 군인이었지만, 긴장한 탓에 그에게도 깍듯이 존대를 했다.
의경의 안내를 받아 경찰서 1층 현관으로 들어서자 복도에는 사복 차림의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누가 경찰이고 누가 민원인인지 분간이 안 됐다. 긴장한 나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충성!” 하고 경례를 했다. 민원인들은 ‘얘 뭐지?’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고, 선배 경찰들은 피식피식 웃었다.
그들의 시선이 부끄러워 서둘러 2층 경무계로 향했다. 경무계는 경찰서 전체 인사, 복무, 행사 등을 총괄하는 부서다.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하니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노크 후 들어섰다. 안에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나는 오른손을 이마에 붙이며 있는 힘껏 “충성!”을 외쳤다. 그때 한 남성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경례할 때 굳이 ‘충성’이라고 안 해도 됩니다.”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경무계에서는 부임 신고 절차를 배우고, 연습을 열 번쯤 반복했다. 신고 내용은 단순했다. “충성! 신고합니다. 순경 오종민은 2003년 2월 17일부로 밀양경찰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하지만 긴장 탓에 발음이 몇 번이나 꼬였다. 연습을 마치고 서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온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당시 경찰서장은 말 한마디 섞기도 어려울 만큼 ‘높은 분’이었다.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큰 탈 없이 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서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다리가 풀릴 뻔했다.
20분쯤 지나자 근무지가 배정되었다. 첫 근무지는 밀양역 바로 앞에 있는 역전파출소였다. 집이 부산이라 출퇴근을 고려해 배려해줬다는 말을 듣고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뒤, 역전파출소 직원이 나를 데리러 왔다. 순찰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파출소는 경위급 파출소장 1명과 나를 포함한 10명의 직원이 세 개 조로 나뉘어 3조 2교대 근무를 했다. 우리 조는 네 명이었고, 그중 한 명은 여경이었다. 3조 2교대란 ‘주주주야비야비야비’ 근무, 즉 주간 3일, 야간 3일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역전파출소는 밀양에서 신고 건수 상위 3위 안에 들 정도로 바쁜 곳이었다. 특히 위치가 역 근처이다 보니 주취자 신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말로만 듣던 주취자들을 직접 상대해보니 하룻밤 만에 진이 다 빠졌다. 말을 해도 전혀 통하지 않았고, 술이 깰 때까지 밤새 파출소에 버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순경 나부랭이’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렇게 첫 야간 근무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아, 내가 진짜 경찰이 되었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하지만 경찰에게는 ‘시보’라는 제도가 있다. 민간 기업의 인턴과 비슷한 개념으로, 1년 동안 정식 임용 유예 기간을 거친다. 이 기간에 징계를 받으면 임용되지 못할 수도 있다. 말년 병장처럼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시기다. 대부분은 이 시기를 무난히 넘기지만, 내 시보 생활은 그렇게 평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