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는 ‘시보 제도’라는 것이 있다. 신임 경찰관이 임용 후 1년 동안 실무 경험과 역량을 평가받는 제도다. 이를 통해 업무에 적응하고 현장 경험을 쌓으며, 근무 태도와 능력을 검증받아 정식 경찰관으로 임용될 수 있는지를 판단받는다. 시보 기간 중 징계를 받게 되면 임용이 취소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시보는 큰 사건 없이 조용히 지나가지만, 나의 시보 생활은 세 가지 사건 덕분에 결코 순탄치 않았다.
첫 번째 사건은 민원인이었다.
어느 관공서에나 이유 없이 민원을 넣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 번 걸리면 매일같이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와 욕설과 협박을 퍼붓는다. 경찰청에 고발하겠다느니, 옷을 벗기겠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들의 전화를 피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민원을 해결하겠다"는 의욕 하나로 전화를 받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는 나만 집요하게 찾아댔다. 선배들은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땐 슬쩍 고개를 돌렸다. 며칠 동안 시달리자 다이어트할 때보다 살이 더 빠져나갔다.
그때 내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경찰대 출신의 젊은 소장님은 말뿐이 아닌 실천으로 앞장서는 합리적인 리더였다. 그가 했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앞으로 어려운 건 다 저에게 맡기세요. 소장이 그런 거 하라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가 눈부셔 보였다. 그를 보며 ‘나도 언젠가 저런 리더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고, 덕분에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됐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반쯤 감긴 눈으로 받았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검찰청입니다”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며칠 전 교통사고 처리와 관련된 문의가 있다며 검찰청으로 오라고 했다. 당시 검찰은 경찰에게도 ‘두려움의 존재’였다. 파출소 근무 중 검찰청에 직접 갈 일은 거의 없는데 불려가니 겁이 났다. 다음 날,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으로 검찰청 00호 검사실에 들어가니 수사관이 앉아 있었다.
수사관은 며칠 전 사거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해 물었다. 무쏘 차량과 택시가 충돌했고, 무쏘는 전복됐지만 탑승자 두 명은 다친 곳이 없었다. 병원에 갈 것을 권했지만, 스스로 괜찮다며 돌아갔다. 그런데 수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차가 뒤집어졌는데 사람이 안 다쳤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혹시 돈 받은 거 아니에요?”
순간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차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억울했지만 그냥 “직접 당사자에게 물어보세요”라고 말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은 다행히 조용히 마무리됐다.
마지막 사건은 더 충격적이었다.
출동한 현장에서 사람이 사망한 일이 있었다. 이 일로 나는 경남지방경찰청 감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시보 경찰관이 감찰 조사를 받는 일은 흔치 않은데, 어쩌다 나에게 그런 일이 닥쳤는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혹시 징계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신고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조사 결과 우리 대응에 문제는 없다는 결론이 나면서 사건은 무사히 넘어갔다.
이 외에도 징계 위기를 넘긴 일이 몇 번 더 있었지만, 다행히도 모두 잘 버텨냈다. 내게 시보의 1년은 정말 길게 느껴졌다. 시보가 끝나던 날, 마치 10년은 근무한 것 같은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보다 시보 생활 빡세게 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