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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호칭하나로 달라진 세상 그러나...

by 오박사

시보 기간 1년은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견디고 난 뒤 파출소 생활은 비교적 순탄했다. 그렇게 조용히 일상이 흘러가던 중, 내 운명을 또다시 뒤흔들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으로 인해 경찰서는 형사 인력의 절반을 교체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경찰서로 호출됐다. 이미 20여 명의 직원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 역시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한 사람씩 서장실로 차례차례 불려 들어갔다. 내 차례가 되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중앙엔 서장님이 앉아 계셨고, 양옆으로는 각 부서 과장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경찰서 내 최고위 간부들이 모여 있는 그 분위기에 겁이 나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그 엄숙한 정적을 깨며 서장님이 한마디를 꺼냈다. “자네, 형사하게.”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묻자, 같은 말이 또 돌아왔다. 형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무척 고되고 힘든 자리로만 여겨져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집이 부산이라 좀 어렵습니다…” 하지만 서장님은 내 말을 듣지 않은 듯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더 이상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모기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강력팀 형사가 되었다.


그 자리에 모였던 20명 모두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지명을 받았다. 단호하게 거절한 몇몇만이 형사의 마수에서 벗어났다고 들었다.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결정된 일을 되돌릴 힘은 내겐 없었다.


형사 생활은 분명 장단점이 있었다. 좋았던 점부터 말하자면, 우선 내 책상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파출소 근무 때는 개인 책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이름이 새겨진 명패까지 얹힌 책상이 생기자 마치 인정받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호칭도 달라졌다. 파출소에 있을 땐 술 취한 이들에게 매일같이 “어디 순경 나부랭이가…”라는 말이나 들었지만, 형사가 되자 “오, 형사님”이라는 존칭이 따라붙었다. 같은 순경이었지만, 말 한마디가 주는 대우는 완전히 달랐다. 자연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그 호칭은 없던 용기마저 만들어주었다.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자유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형사들은 개인 업무용 휴대폰을 지급받는데, 그건 사실상 족쇄나 다름없었다. 언제 호출될지 몰라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친구들과 마음 편히 술 한잔 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당직 후에도 온전히 퇴근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한창 놀고 싶은 20대 후반의 내게 형사 생활은 감옥처럼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팀 관할 지역에서 살인사건까지 발생했다. 자체 수사본부가 차려졌고, 우리 팀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게 되었다. 두 달 가까이 집에도 거의 들어가지 못한 채 매달렸지만, 사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점점 지쳐가던 어느 날, 드디어 범인이 검거되었다. 범인이 눈앞에 나타난 그 순간, 놀랍게도 그동안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아, 이 맛에 형사하는구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전율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피로와 답답함이 남았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 나는 결국 형사의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 달 뒤, 수사과장님을 찾아가 발령을 요청했다. 과장님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지만, 내 간곡한 부탁에 마침내 “그래, 보내줄게”라고 약속하셨다.


그렇게 강력팀의 ‘오 형사님’이 된 지 3개월 만에 나는 다시 지구대로 발령받았다. 또다시 ‘순경 나부랭이’가 되었지만, 자유의 달콤함 앞에 그런 것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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