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팀을 떠나 다시 지구대로 나오니 숨통이 트였다. 마치 감옥에서 출소한 기분이었다. 퇴근 후 호출될 일이 없다는 자유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결코 모른다. 다시 주취자들과 씨름하는 일상이 시작되었지만, 예전처럼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유의 맛은 야간근무의 피로마저 무디게 만들 만큼 달콤했다.
지구대로 복귀한 이후 5년 동안 내 근무지는 네 번이나 바뀌었다. 경비계 1년 6개월, 502전경대 2년, 하남파출소 6개월, 그리고 유치장 6개월. 그중 경비계는 전의경 관리, 집회 및 대테러, 경호 업무 등을 담당하는 부서다. 당시 경비계에 근무하던 직원이 다른 보직으로 옮기기 위해 후임자를 찾던 중 내 이름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그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누군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를 인정해 준다는 뜻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장으로 승진하면 전경부대에서 일정 기간 의무복무를 해야 했다. 경비계에서 승진한 나는 어느 부대로 가야 할지 고민했다. 경남 지역에는 창원, 진주, 김해, 밀양 등 여러 전경대가 있었고, 나는 밀양을 1지망, 김해를 2지망으로 적었다. 결과는 2지망인 김해, 장유에 위치한 502전경대 발령. 처음엔 1지망이 아니라 실망했지만, 알고 보니 오히려 행운이었다. 502전경대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를 경호하던 부대로, 출동이 거의 없어 경찰들 사이에서 선호도 1순위였다. 그때는 몰랐다. 이 행운이 나를 깊은 나태의 터널로 이끌 줄은.
502전경대에서의 2년은 내 20년 경찰 생활 중 가장 여유롭고 평온한 시간이었다. 출퇴근 거리도 가깝고, 업무는 적당히 편했고, 휴무도 많았다. 가끔은 전경들과 외출을 나가기도 하며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그림자가 있다. 지나치게 편한 2년은 내 몸과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다. 단지, 내가 그 생활에 너무도 잘 적응해버렸을 뿐이었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밀양으로 돌아왔다. 편한 생활 뒤에 찾아온 업무는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근무지로 향하는 발걸음조차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발령받은 하남파출소가 비교적 한산한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 번 나태해진 몸과 마음은 쉽게 되돌릴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하남파출소 근무는 나에게 딱 맞았지만, 6개월 만에 유치장으로 강제 발령이 났다.
당시 유치장은 구치소 역할을 함께 수행하며 유치 인원이 많아 직원들이 기피하는 부서였다. 그래서 6개월 단위로 순번을 정해 강제 발령을 냈는데, 하필 내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긴장했지만, 막상 근무를 시작해보니 유치장도 그렇게 힘든 곳은 아니었다. 함께 근무한 직원들을 잘 만난 덕에 오히려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밀양에서도 계속해서 ‘편한 자리’를 찾아다녔고, “시키는 일만 하며 시간이나 때우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나태함에 대한 대가일지도 모를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