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해마다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인사 발령을 한다. 2010년 2월 중순에도 어김없이 인사 발령이 예정돼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유치장에서 6개월째 근무 중이었다. 원하면 1년까지 연장이 가능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유치장에서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다. 가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유치인을 제외하면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출소 외엔 딱히 옮길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아 연장을 마음속으로 거의 확정해 두고 있었다.
그 전화가 오기 전까진.
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길,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는 경무계에 근무 중인 권○○ 경사였다. 경무계는 경찰 조직 내에서 총무, 인사, 홍보, 기획 등 회사로 치면 핵심 관리 부서의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곳이다. 그만큼 일이 많고 복잡해 ‘격무계’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직원들 사이에서 ‘비선호 부서 3위’ 안에 드는 악명 높은 부서였다.
그가 말했다. “이번 발령 때 직원 한 명이 나가는데, 그 자리에 올 생각 있으세요?”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사실 나는 5년 동안 상대적으로 편한 보직만 골라 근무해 왔다. 일다운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기에,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마음 한켠에선 ‘어떻게든 안 갈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며 스스로를 설득하려 애썼다. 마침 그 해 둘째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바쁜 부서에 가면 육아에 신경 쓰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면 집에서도 자연스레 반대할 테니, 그것을 핑계 삼아 거절하면 되겠다는 계산도 들었다.
하지만 끝내 내 발목을 잡은 것은 '신념'이었다. “나를 그 자리에 부른다는 건, 나를 인정해 준다는 뜻이 아닐까?”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틀 동안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가면 어떤 점이 좋고, 가지 않으면 어떤 점이 나쁠까?’ 솔직히 말해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지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결국 나를 등 떠밀었다.
그렇게 나는 결심했다. 2010년 2월, 나는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경무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