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무계 한 사무실에 네 명이 근무했다. 경무계장, 남자 경사 한 명, 여자 경장 한 명, 그리고 나. 나는 주로 교대 근무만 하다가 처음으로 일반 회사원처럼 아침에 출근하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모든 게 어색했다. 다들 말수가 적어 사무실은 첫날부터 절간처럼 조용했고, 답답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혔다. 아는 것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괜히 모니터만 멍하니 쳐다봤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 눈치만 보였다.
보통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해주기 마련인데, 내 전임자는 발령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계장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 6개월 만에 전출을 신청했고, 그 일로 인해 아예 사무실에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도 “업무 책자를 보라”, “다른 경찰서에 물어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 상태에서 계장님은 다양한 업무를 지시했지만, 용어조차 생소해 무슨 말인지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담당 업무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홍보, 복지, 전화 친절도, 보안, 상조, 정보공개, 기록물 관리, 서무 업무 등 주요 업무만 해도 한 손에 꼽을 수 없었다. 일은 많고, 아는 것은 없으니 책상 위엔 일만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경찰 조직은 매년 3월을 기점으로 연간 업무가 시작된다. 그때 각종 계획을 세우고, 매달·분기별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3월이 되어도 보고서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설상가상 4월에는 경찰청 보안감사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하필이면 보안업무도 내 담당이었다. 경찰은 비밀문서와 관련된 일이 많아 보안관리에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징계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그때 깨달았다. 나는 지금 ‘지옥’에 발을 들인 셈이었다.
일을 몰라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일을 한다는 그 자체’였다. 한동안 나태한 생활에 젖어 있다가 다시 업무에 뛰어드니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았다. 남들에겐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슬쩍 피하며 살아왔기에 그 습관을 지우는 데만 세 달이 걸렸다. 결국 ‘하반기 인사 때 전출 가야지’라는 다짐을 매일 되뇌었다. 스트레스는 극심했고, 매일 술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시작된 집에서의 음주는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습관이 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결국 업무 책자를 펼쳤다. 출퇴근 기차 안에서 틈틈이 책을 읽고 업무를 익혔다. 웃기게도 진짜 책으로도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다른 경찰서 직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것은 직접 다른 경찰서에 전화해가며 물었고, 그 덕분에 타 기관 동료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배우고 처리하면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누가 알려주는 것보다, 내가 몰라서 찾아본 게 훨씬 기억에 남는다’는 것. 결과적으로 전임자의 무관심이 오히려 나에게는 득이 되었다.
적응하는 데 딱 3개월이 걸렸다. 그 3개월 동안 매일 “이번 인사에 꼭 나가야지”라고 다짐했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 경무계에 무려 6년이나 몸담게 되었다.
일에 익숙해지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경무계는 경찰조직 전체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조직의 큰 그림을 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내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