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무계 업무에 완전히 적응하기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다. 몸에 밴 나태함의 껍질을 벗겨내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부서 간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 조직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무계는 경찰서 전체의 성과를 조율하는 부서다. 모든 부서, 모든 직원의 실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공공기관에서 ‘성과’는 개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다. 물론 그 평가가 공정하냐는 논란은 늘 있지만, 그 존재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당시 성과는 점점 인사제도에도 반영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경찰의 성과 평가는 네 단계로 나뉜다: S등급(20%), A등급(40%), B등급(30%), C등급(10%). 이 중 ‘개인 성과’는 같은 계급끼리 경쟁한다. 예를 들어 내가 경장이라면, 경찰서 전체 경장들 가운데 상위 20%가 S등급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개인 성과가 인사에 반영된다는 소문이 돌더니 결국 공문이 내려왔다. C등급을 받으면 계장이나 파출소장 같은 주요 보직을 맡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듬해 2월, 정기 인사발령에서 일이 벌어졌다. 전년도에 00파출소장을 맡았던 한 분이 C등급을 받고, 다음 해에 다시 소장 보직에 지원했지만 결국 배정받지 못한 것이다. 더 충격적인 건, 그가 이끌던 파출소의 부하직원이 대신 소장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결국 병가를 냈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분의 모습에 내 미래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경찰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이 찾아왔다.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했다. 경찰에는 수사, 교통, 경비 등 전공처럼 여겨지는 분야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냥 경찰’이었다. “이 분야에선 내가 전문가야”라고 말할 수 있는 무기가 없었다. 승진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니 그분의 좌절에 내 모습이 겹쳐졌던 것이다.
입직 8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나는 어떤 경찰이 되어야 할까?’ 겨우 경무계에 적응했다 싶었는데, 또 다른 시련이 밀려왔다. ‘수사를 다시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6개월 넘게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내 고민에 대한 실마리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