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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트위터에서 찾은 나의 미래

by 오박사

미래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일단은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당시 나는 경찰서 홍보 업무도 맡고 있었다.


2011년 무렵, 경찰 홍보의 주요 수단은 신문, 케이블TV, 그리고 홈페이지였다. 주로 경찰서 행사 장면을 촬영한 뒤 기사를 작성해 언론에 배포하거나 홈페이지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그때만 해도 SNS를 홍보에 활용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SNS 자체를 아예 몰랐다.


그해 8월, 경찰청 강당에서 전국 홍보 담당자 워크숍이 열릴 예정이었다. 경남청 산하 22개 경찰서 중 4개서에서 참석자를 뽑는다기에 자원자를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결국 나머지 3개 경찰서는 담당자를 ‘차출’해야 했다. 나는 원래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누구보다 먼저 손을 들었다.


전국에서 모인 홍보 담당자 80여 명이 경찰청 강당에 모였다. 전국 인원의 약 30%가 모인 셈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지만, 나와 같은 일을 한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낯설지 않았다. 일종의 동질감이 느껴졌다.

워크숍은 늘 그렇듯 본청 과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고, 이어지는 교육은 솔직히 지루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잡담을 하거나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뭔가를 배우겠다는 마음보다는, 서울 나들이 겸 하루 쉬자는 생각으로 참석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세 번째 시간에 경찰청 홍보실 소속 경사 한 명이 강단에 올랐다. 경사가 교육을 진행하는 일은 드물어 “실무 담당자려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그가 꺼낸 주제가 흥미로웠다. 바로 ‘트위터’였다. 다른 이들은 여전히 각자 할 일을 하느라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는 세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트위터가 언론보다 빨랐던 ‘허드슨강 비상착륙 사건’, 트위터 대응에 실패한 00호텔 한복 사건, 그리고 SNS를 활용해 수배자를 검거한 어느 형사의 이야기였다.


처음 듣는 ‘트위터’ 이야기는 신선했고, 이상하게도 묘한 끌림이 있었다. 특히 강의 말미에 등장한 트위터 팔로워 수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짜릿한 전율마저 느껴졌다. 그 순간, 내 오랜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래, 이거다. 이게 내 무기가 될 수 있겠구나.’ 트위터의 힘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팔로워가 10만 명이 넘으면, 청장님도 나를 쉽게 무시하지 못할 거야.’ 그날 나는 ‘파워 트위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6개월 동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나는, 마침내 새로운 가능성을 만났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실행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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