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의심보다 먼저 마비되는 판단

by 오박사

한 여성이 거액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사건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경찰관이 바로 곁에 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피싱범의 전화를 받고 있었고, 마치 정신이 홀린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피싱범들에게 약 7,000만 원을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그들에게 돈을 보내려 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행동이 결코 드문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그녀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피싱 범죄 피해자들은 생각보다 많다.


TV 프로그램에서도 피싱범에게 돈을 전달하러 가는 사람을 경찰이 제지해도, 이를 뿌리치고 나아가려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그 모습을 보면 피싱범들의 세뇌가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정교하게 파고드는 범죄다. 피싱범들은 검찰청이나 경찰청을 사칭해 강한 공포심을 유발하고, 그 공포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지시에 따르도록 만든다. 여기에 더해 사람은 본능적으로 권위에 복종하려는 경향이 있어, 상대의 말을 쉽게 의심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피싱범들은 이미 유출된 개인정보를 활용해 신뢰를 먼저 쌓는다. 이름, 주소, 가족관계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하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사기라는 의심을 사전에 제거한다. 이후 반복적인 전화와 메시지, 세뇌에 가까운 말투로 피해자의 사고력을 점점 마비시킨다. 특히 최근 큰 스트레스나 위기를 겪은 사람일수록 의심보다는 ‘이 상황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더욱 쉽게 조종당하게 된다.


피싱은 결국 사람을 속이는 기술이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심리적으로, 기술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대응하기 어렵다. “나는 괜찮다”는 생각 대신, 나 역시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평소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 또한 중요한 예방책이 된다. 더불어 몇 가지 대표적인 피싱 신호만 알고 있어도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개인정보를 묻는 경우 ▲특정 앱 설치를 요구하는 경우 ▲조치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고 압박하는 경우 ▲현금 출금이나 송금을 유도하는 경우 ▲신분증 사진을 요구하는 경우 등은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사람의 심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심하지 않는 태도다. 스마트폰으로 세상은 훨씬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스스로 지켜야 할 것도 많아졌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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