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말은 흘러가고 글은 남는다

by 오박사

우리나라의 결혼 제도에 대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는 물 흐르듯 말이 막힘없이 이어졌고, 꽤 오랜 시간 열정적으로 의견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 대화를 복기해 글로 옮기려 하자, 이상하리만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내가 했던 말인데, 막상 글로 쓰려니 무엇을 말했는지조차 정리되지 않았다. 말로는 쉬웠던 생각이 글 앞에서는 시작조차 어려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경험은 왜 생기는 걸까.


말은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즉흥성이 강하고, 진위 여부나 논리적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어질 수 있다. 반면 글은 다르다. 구조와 논리가 갖춰지지 않으면 문장이 끊기고, 흐름이 무너진다. 게다가 글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이기에, 더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 완벽함에 대한 압박이 글쓰기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또 하나의 차이는 ‘사라짐’과 ‘남음’이다. 말은 내뱉는 순간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만,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글 앞에서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뇌의 작동 방식도 다르다. 말은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언어 처리 영역이 빠르게 반응하며 만들어지지만, 글은 기억을 불러오고 사고를 정리한 뒤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여러 인지 기능이 동시에 작동하니, 뇌의 회로가 훨씬 복잡해지는 셈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결국 훈련의 영역인 것 같다. 말 잘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말하듯 써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좀처럼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평소에 하는 말 자체가 충분히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말 또한 웅변이나 토론처럼, 생각을 정리하며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말할 때도 조금 더 생각하고 구조를 세우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그렇게 쌓인 말들이 글이 되었을 때,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운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조심스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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