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이 있다. 노약자가 없을 땐 일반 승객이 앉기도 한다. 버스에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탑승했다. 노약자석에 20대 여성 한 명, 엄마와 6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 각각 세 명이 앉아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자리를 양보한 것은 일반석에 앉아있던 50대가량 아주머니 한분이었다.
엄마는 휴대폰을 보며 모른 척하고 아이는 노약자석에 대한 인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어이없었던 것은 그들이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는 것이다. 내리기 전 엄마는 아이에게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 모습을 보니 입맛이 썼다.
아마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말투도 책에서 배운 대로 아주 예쁘게 대화하듯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어른을 공경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배우지 못한다면 자신이 아이에게 쏟는 애정이 나중에 자신을 공경하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원망을 내뱉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자리를 양보하는 것 하나가 뭐 별거냐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엔 많은 의미가 숨어있다. 어른을 공경하는 태도는 인간사이의 질서와 존중을 배우는 것이며,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것이다. 또한, 양보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할 수 있으며, 성숙한 정체성을 기를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아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한 사회는 이기심과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어른 공경, 양보, 배려에 대한 가르침은 단지 예의 바른 아이를 넘어 인간다움과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는 성숙한 사회인으로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