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몇몇 의사들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의학의 발전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식생활 개선과 보건 위생의 향상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의료 기술 덕도 있겠지만, 때로는 오히려 이러한 의학의 발전이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더 키우는 결과를 낳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더 오래 살기 위해 의학에 의지하고, 새로운 치료법과 약물에 기대를 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바뀌지 않는다. 인간은 결국 죽는 존재라는 점이다. 수명을 조금 더 늘려 오래 산다고 해서 그 자체가 반드시 좋은 일일까?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면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과거에도 불멸과 영생을 갈망했던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진정으로 오래 살지 못했다. 오히려 불멸에 대한 집착이 그들을 점점 병들게 했고, 매일을 불안과 집착 속에서 살아가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진시황이다. 천하를 최초로 통일한 그는 자신의 제국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피하고자 불사약을 찾았고, 수은을 장기 복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약은 그를 살리는 대신, 건강을 해치고 말았다. 그는 죽음의 그림자를 지우려 할수록 그 공포에 더 짓눌렸고, 결국 행복한 오늘을 누리지 못한 채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죽음을 거부하는 이와 받아들이는 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는가, 그렇지 못한가의 차이다. 물론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짧고 소중한 생애를 충실히 살아가는 이들은 죽음을 인생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는 단순히 '잘 사는 법'만큼이나 **'잘 죽는 법'**도 고민해야 할 시대가 되었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삶의 마무리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오늘 하루의 소중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죽지 않을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잘 살다가 잘 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