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과속'을 멈추고 '지속'을 배우다.

by 오종민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얘기, 축구 얘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만 한다." 흔한 우스갯소리지만, 나 역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축구 마니아'였다. 23년 차 베테랑 경찰로 거친 현장을 누볐듯, 운동장 위에서도 꽤 날아다녔다고 자부했다.


부산 대천리 중학교 운동장. 아침 8시의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대천 축구회'에 위풍당당하게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산산조각 나는 데는 고작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당시 내 몸무게는 인생 최대치인 86kg.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베테랑들의 정교한 티키타카 사이를 헤매다 보니 심장이 터질 듯 헐떡여야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경찰의 자존심은 온데간데없었고, 쏟아지는 실수 속에서 내게 찍힌 낙인은 참담하게도 '축알못(축구 알지도 못하는 놈)'이었다.


누구나 공격수가 되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하지만, 현실의 나는 묵묵히 궂은일을 해내야 하는 수비수였다. 처음엔 공이 날아오는 것조차 두려웠다. 내 실수 하나가 실점으로 직결될 때면, 등 뒤로 쏟아지는 동료들의 탄식에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하지만 매주 끈질기게 운동장에 출근 도장을 찍자 마법이 시작됐다. 둔탁했던 발등에 공이 자석처럼 붙었고, 찰나의 순간 상대의 공격 루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친 태클로 상대의 흐름을 끊어내고 우리 팀의 통쾌한 역습을 여는 쾌감은 득점 그 이상이었다. 내 몸이 팀이라는 거대한 기어의 톱니바퀴로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던 순간, 내 안의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문제는 그 짜릿함이 서서히 '독'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하루에 다섯 경기씩 뛰며 운동장을 질주했다. 무릎에서 비명 같은 통증이 밀려왔지만, 두꺼운 보호대로 억누르며 미련하게 뛰고 또 뛰었다.


결국 1년 만에 내 폭주는 수술대 위에서 강제로 멈춰 섰다. 진단명은 양쪽 무릎 연골 파열. 6개월간 축구화 끈을 묶지 못하는 형벌을 받고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열정이라는 근사한 이름표를 달고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내 몸을 갉아먹는 맹목적인 '욕심'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다시 푸른 잔디를 밟는다. 새로운 조기축구회까지 가입했지만, 예전처럼 미친 듯이 돌진하지는 않는다. 무작정 세게 차는 것보다 정확한 타이밍에 패스하는 법을, 나 혼자 돋보이기보다 동료들과 보폭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축구가 내게 준 진짜 선물은 화려한 개인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내일도, 모레도 오래도록 함께 웃으며 뛸 수 있는 '완급 조절의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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