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내 삶에 영원히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불청객

by 오종민

원래 내 사전에 ‘휴식’이란 단어는 없었다. 쉬는 날에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온몸이 근질거려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2013년 처음 강단에 선 이후로 내 삶의 속도계는 늘 한계치를 향해 꺾여 있었다. 특히 2021년, 경찰서 직장협의회장까지 맡게 되면서 내 에너지는 말 그대로 폭발하듯 타올랐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나는 알지 못했다. 2022년 초, 연달아 겪은 마음의 상처들이 과부하가 걸린 내 엔진을 산산조각 낼 것이라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나는 오만했다. 타고난 긍정주의자였던 나는 어떤 시련이 닥쳐도 오뚝이처럼 털고 일어났다. 그렇기에 우울증으로 무너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내심 ‘왜 저걸 스스로 이겨내지 못할까? 의지가 약해서 그래’라며 함부로 재단하곤 했다. 적어도 나라는 인간에게 우울이나 무기력 같은 단어는 평생 찾아오지 않을 불청객이라 확신했다. 남들이 다 겪는다는 갱년기마저도 내 튼튼한 멘탈 앞에서는 비껴갈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바위가 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면 나아지겠지.’ 하지만 공기는 폐까지 닿지 못하고 목 끝에서 턱턱 막혔다. 소화불량인 줄 알았던 답답함은 하루 종일 나를 옥죄었고, 밤이 되어 자리에 누웠을 때는 아예 숨을 쉬기조차 고통스러웠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며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결국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운 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해야 했다.


경찰서에 출근해서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서류를 들여다보아도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던 중 갑자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당혹스러웠다. 20년 넘게 거친 현장을 누벼온 내가 사무실 한가운데서 까닭 없이 눈물을 흘리다니. 황급히 밖으로 나가 주차장을 미친 듯이 몇 바퀴나 돌며 거친 숨을 골랐다. 하지만 가슴 속의 거대한 돌덩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서늘한 공포가 목덜미를 스쳤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래, 일요일에 조기축구를 뛰고 땀을 쫙 빼면 다 날아갈 거야.’ 나는 남은 이틀을 그 희망 하나로 버텼다. 2017년부터 시작한 축구는 내 삶의 활력소였다. 일기예보를 수시로 확인하고, 경기 날이면 새벽 5시에 번쩍 눈이 떠질 만큼 사랑하는 일이었다. 마침내 일요일, 나는 그토록 기다리던 잔디밭을 달렸다. 하지만 5년 만에 처음으로, 공을 차는 그 순간이 숨 막히게 재미없고 끔찍했다. 내 안의 어떤 스위치가 완전히 꺼져버렸다는 것을, 내 상태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직감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세상은 흑백으로 변했다. 낮에는 사람들의 백색소음 속에 섞여 억지로 버텼지만, 태양이 지고 나면 끔찍한 지옥이 시작되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밤, 세상의 모든 어둠이 내 방으로만 몰려오는 것 같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잠들지 못하는 끔찍한 밤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은 형체도 없이 바스러져 갔다.


어느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서늘한 질문 하나가 나를 얼어붙게 했다. ‘어떻게 해야 이 고통이 끝날까? 죽으면… 이 짓눌림도 멈출까?’ 그 생각에 다다른 순간, 나는 내 자신이 미치도록 무서워졌다. 동시에, 우울증으로 삶을 놓아버린 사람들의 심연이 처음으로 이해되었다. 그들은 결코 마음이 약해서, 그저 슬퍼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절망과 두려움의 늪에서 숨을 쉬기 위해, 살갗을 찢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긍정적이고 활기찬 경찰관이 아니었다. 밤이 두려웠고, 이제는 다가올 낮마저 공포스러웠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내가 나를 죽일 수도 있겠다.’


바닥에 닿았음을 인정하자, 역설적으로 살고 싶다는 가장 절초한 본능이 꿈틀거렸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를 구하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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