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루저(패배자)’라 칭하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은 대체 언제부터, 왜 그런 잔인한 믿음을 갖게 된 걸까요? 부끄럽지만, 한때의 저 역시 그 깊고 어두운 터널 속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공부도, 운동도, 심지어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인관계조차 어느 하나 내세울 것 없이 겉돈다고 느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정말 구제 불능의 루저였을까요? 아니면, 남들이 나를 그렇게 평가할 것이라 지레짐작하며 스스로 덧씌운 마음의 굴레였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결코 루저가 아니었습니다. 그 초라한 자아상은 오직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제 스스로 깎아 만든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어차피 나는 안 될 거야.’ 이 파괴적인 주문을 속으로 되뇌다 보니, 자연스레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니 성취가 있을 리 만무했고, 그럴수록 어깨는 더욱 움츠러들었습니다. 저는 타인의 날 선 시선이 두려워 스스로 깊은 굴을 파고 들어갔고, 세상과 안전한 거리를 둔 채 숨어 지내기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꽉 막혀있던 제 삶에 작은 균열이 일어났습니다. 영원히 못할 것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떤 일에서 뜻밖의 ‘잘함(재능)’을 발견한 것입니다. 대단한 업적은 아니었지만, 그 아주 작은 계기는 제 마음속에 일말의 희망이라는 불씨를 당겼습니다. ‘어쩌면… 나에게도 남들만큼 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숨어있을지도 몰라.’
그 조심스러운 기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제 안에는 분명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했고, 심지어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용기를 내어 시도하는 일들이 조금씩 부드럽게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설령 결과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예전처럼 깊은 절망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결과의 성공 여부보다, 두려움을 뚫고 다시 ‘시도할 수 있게 된 나 자신’이 그저 대견하고 고마웠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누군가가 제게 진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대체 못하시는 게 뭡니까?” 순간, 저는 멍해졌습니다.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죠. ‘못하는 게 뭐냐고요? 당연히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다만, 저는 그동안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억울한 감옥 속에서 너무 오래 살아왔기에, 이제는 그저 제게 주어진 일, 제가 시도하는 모든 과정을 온전히 즐기기로 마음먹었을 뿐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묵묵히 즐기는 그 단단한 태도가, 타인의 눈에는 여유롭고 ‘다 잘하는 사람’처럼 비쳤던 모양입니다.
타인이 세워둔 획일적인 기준과 무의미한 비교의 늪에서 한 걸음 걸어 나오자, 비로소 제가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찬란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제 자신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루저가 아니라고. 아니, 애초에 제 인생에서 루저였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