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 나를 지키려다 나를 잃는 순간

by 오종민

사람은 누구나 상처로부터 마음을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꺼내 듭니다. “난 전혀 상처받지 않았어.”, “모든 건 상황 탓이야.”, “어차피 난 안 될 운명이었어.” 때로는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초라한 현재를 애써 외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어기제는 처음엔 달콤한 진통제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는 일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빠져나오고 싶어도 길을 찾지 못해 갇혀버리고 말 겁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쳐두었던 방어벽이, 결국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우리는 왜 스스로를 더 옭아매는 방어기제에 기대는 걸까요? 그 이면에는 현실을 직시할 용기의 부재가 숨어 있습니다. 지금 나의 부족한 모습을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렇게 현실에 눈을 감고 스스로를 속이는 사이, 삶은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에 멈춰버립니다.


다시 밖으로 나와 발걸음을 내딛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물을 더 채울 수 있듯, 나의 부족함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성장이 시작됩니다. 사실 타인은 우리의 결핍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큰 관심이 없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우리의 허상이 스스로를 더 옥죄고 있었을 뿐입니다.


지금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답은 명확합니다. 나의 부족함을 용기 있게 인정하고, 빈 그릇을 무엇으로 채워나갈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성껏 나를 채우다 보면, 어느새 내 그릇은 풍족함으로 찰랑거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