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건대, 저의 학창 시절은 지극히 무채색에 가까웠습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를 사귀는 일은 늘 버거웠고, 운동도 공부도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다리던 체육 시간은 제게 피하고 싶은 형벌과도 같았습니다. 달리기 출발선에 서면 언제나 꼴찌는 제 몫이었고, 체력장 등급은 늘 바닥을 맴돌았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며 성적마저 곤두박질치자, 저는 스스로에게 아주 단호한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래, 나는 원래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야.’ 그렇게 단정 지어버리니 더 이상 발버둥 칠 이유조차 사라졌습니다. 새 학기가 되어 왁자지껄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제 머릿속엔 ‘혹시 내 짝꿍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만이 가득했습니다. 스스로 만든 아주 작고 초라한 어항 속에 저 자신을 가둬버린 것입니다.
제 삶의 궤도가 기적처럼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친구와 짝꿍이 되면서부터였습니다. 그 친구는 저와 완벽한 대척점에 있는 아이였습니다. 공부도, 운동도 뛰어났고 늘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골목대장 같았죠. 겉보기엔 완벽해 보였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불같은 다혈질에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해서, 툭하면 친구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곤 했습니다.
누가 봐도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기 중반쯤, 놀랍게도 우리는 둘도 없는 절친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저의 ‘쓸모’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내세울 특기가 없었지만, 남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쉽게 화를 내지 않으며, 결코 싸움을 만들지 않는 둥글둥글한 사람이었습니다. 친구의 불같은 다혈질을 저의 잔잔한 융화력이 스펀지처럼 흡수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단짝이 되자, 저는 은연중에 멋진 그 친구를 닮고 싶어졌습니다. 용기를 내어 함께 농구 코트를 누볐고, 그의 공부 방식을 곁눈질로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난생처음 던진 농구공이 림을 통과할 때의 짜릿함,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전교 50등 안에 제 이름이 걸렸을 때의 벅찬 감동. 집안에서는 그야말로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제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아,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나는 그저 나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틀에 가두고 있었을 뿐이구나!’
한 번 물꼬를 튼 자신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4년 내내 장학생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고, 까다로운 기사 자격증도 거머쥐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일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감각이 혈관을 타고 흐르자, 세상에 못 해낼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든든한 믿음은 결국 ‘경찰공무원 합격’이라는 눈부신 결실로 이어졌고, 지금은 조직에서 ‘일 참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지인이 저를 보며 이렇게 묻더군요. “도대체 당신은 못하는 게 뭡니까?” 달리기 꼴찌에 구석 자리를 전전하던 과거의 저를 떠올리면, 실로 기적 같은 찬사였습니다.
저는 제 삶의 궤적을 돌아볼 때마다 관상어 ‘코이’를 떠올립니다. 이 작은 물고기는 어항에 가두어 기르면 고작 10cm밖에 자라지 않지만, 커다란 연못이나 강에 방류하면 무려 1m가 넘는 대어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 스스로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10cm 어항에 가두었을 때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될 거라는 핑계가 가장 편한 도피처였으니까요.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맛본 작은 성공들이 저를 어항 밖으로 끌어냈고, ‘할 수 있다’는 감각은 저를 더 넓은 연못으로 인도했습니다. 그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성장을 옭아맨 것은 타인의 싸늘한 시선이나 부족한 재능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요. 반대로, 나를 무한히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역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참 잘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더 잘하는 것을 만들어가기 위해 매일 즐겁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못한다고 믿으며 지레 포기하던 그 시절보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부딪히는 지금의 제 삶이 훨씬 더 눈부시고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