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화해가 아니라 상처로부터의 단호한 분리다.

by 오종민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낭만적이거나 고결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벼운 말다툼 뒤에 툭 던지는 사과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영혼에 새겨진 씻을 수 없는 상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끔찍한 고통, 불쑥불쑥 멱살을 쥐고 흔드는 원망의 늪에서 기어 나올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처절한 사투입니다.


오래전, 자신의 자녀를 죽인 살인범을 용서했다는 부모의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당시의 저는 그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나라면 차라리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내 손으로 직접 피의 복수를 하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그것이 훨씬 인간적이고 당연한 본성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 지독한 분노의 늪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한 단체의 장을 맡고 있을 때, 부회장 직분을 가진 이에게 두 차례나 공개적이고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날 이후 제 마음의 둑은 무참히 무너져 내렸고, 지독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얼굴은 쳐다보기도 싫었고,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았습니다. 업무상 피할 수 없는 연락에는 차갑고 기계적인 단답형의 텍스트만 던질 뿐이었습니다.


진짜 비극은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직장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그를 마주쳐야 할 때마다 활화산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그 검은 감정은 고스란히 제 평범한 일상마저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그날의 모욕을 곱씹으며 이를 갈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분노하고 저주해도 현실은 단 1밀리미터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타들어 가며 무너져 내리는 것은 가해자인 그가 아니라, 피해자인 저의 감정과 삶뿐이었습니다. 제가 마신 독약으로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는 꼴이었습니다.


숨이 막힐 듯한 고통 속에서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데, 나는 대체 무엇을 기대하며 이토록 괴로워하는 걸까?’ 그제야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나를 이토록 갉아먹은 것은 그 사람의 과거 행동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변하길 바라는’ 저의 헛된 기대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흔한 말처럼, 그는 절대 변하지 않을 부류같았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아, 저 인간은 원래 저런 바닥을 가진 사람이야. 그러니 딱 이 정도의 거리만 두면 돼.’


생각의 초점이 상대가 아닌 저에게로 옮겨지자, 놀랍게도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치워진 듯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읊조렸습니다. ‘그래, 용서하자.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이 선언은 그의 무례한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닙니다. 그를 가슴 깊이 이해하려 애쓴 것도, 껄끄러운 관계를 억지로 회복하려 한 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저 억울한 ‘피해자’라는 지옥 같은 프레임에서 제 마음을 한 걸음 밖으로 빼낸 것뿐입니다. 이기적 이게도, 그 결정은 철저히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건이 벌어진 후, 그는 제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내 나를 찌르고 괴롭힌 것은 그가 아니라 제 마음이었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망령을 끊임없이 소환해 상처를 덧낸 것은 다름 아닌 저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 더 이상 이 쓰레기 같은 감정에 내 아까운 인생을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그를 마주치거나 통화를 해도 더 이상 핏대가 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수준으로 대하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한심하고 안쓰럽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사건과 사람, 그리고 내 감정을 철저히 분리해 내자 비로소 세상이 맑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독했던 경험을 통해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용서는 나에게 상처 준 상대를 위해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내리는 처방전이다. 용서는 억지스러운 이해도, 눈물겨운 화해도, 관계의 회복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 상처의 늪에 더 이상 내 삶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다. 혹시 지금 누군가를 향한 끓어오르는 분노와 원망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면, 그 사건에서 자신을 단호하게 분리해 보시길 권합니다.


용서는 칭찬받을 만한 미덕도, 착한 사람들의 선택도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해 내리는 가장 이기적이고 위대한 선언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