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책'을 읽은 척만 하며 살았다.

by 오종민

나는 오랫동안 책을 읽은 '척'만 하며 살았다

제가 책을 좋아하게 된 출발점에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여섯 살 무렵, 어머니는 제게 세상의 지식을 쥐여주고 싶으셨는지 거실 책장 가득 동아백과사전과 위인전, 디즈니 동화와 이솝우화를 빼곡히 꽂아 두셨습니다. 스마트폰은커녕 흑백 TV마저 귀했던 그 시절, 방구석에 앉아 놀거리를 찾던 제 시선은 자연스레 책장으로 향했습니다. 무심코 꺼내든 책장 너머에는 제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신기하고 거대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머리가 조금 굵어진 중학생 시절에는 《공작왕》, 《북두의 권》, 《시티헌터》 같은 유행하는 만화책을 스펀지처럼 흡수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추리소설과 판타지, 그리고 무협지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특히 《삼국지》와 《영웅문》은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다섯 번씩은 반복해 읽었던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 특유의 끓어오르는 혈기와 에너지를 활자 속 무림의 세계로 발산한 덕분에, 저는 남들 다 겪는 험난한 사춘기를 꽤나 무던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책과의 인연은 끈질기게 이어졌습니다. 20~30대에는 성공을 갈망하며 100권이 넘는 자기계발서를 탐독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제 현실은 여전히 평범한 공무원이었고, 그들처럼 밤잠을 줄여가며 뼈를 깎는 노력은 하기 싫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들의 찬란한 성공담이 모두 뜬구름 잡는 허구처럼 느껴졌고, 저는 서서히 책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주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들이 다 읽는다는 베스트셀러나 유명 필독서는 시대에 뒤처지기 싫어 간간이 챙겨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늘 해소되지 않는 찝찝함이 있었습니다. 독서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색을 통해 저자와 깊이 만난다"라고 우아하게 말했습니다. 인터넷에는 책 한 권을 읽고도 철학자처럼 멋들어진 서평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저는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똑같은 활자를 읽었는데 왜 나는 저런 깊은 감정을 느끼지 못할까?', '누군가 내게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 왜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리는 걸까?' 그럴 때면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책을 '읽어온' 것이 아니라, 지적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책을 '읽은 척'만 해왔던 것일지도 몰랐습니다.


책은 마치 저와 치열한 밀당을 하는 존재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긴 싸움 끝에 마침내 제가 백기를 들었습니다. 스스로 씌웠던 '완벽한 독자'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다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비우니 그제야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보였습니다. '책의 문장이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동안 나를 위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을 '잘' 읽는 사람들을 어설프게 흉내 내려 했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활자에서 얻은 것이 결코 없지 않았습니다. 삶이 팍팍해 길을 잃었을 때 나침반이 되어준 것도, 경찰 생활 중 잘못된 방향으로 폭주하려 할 때 제동을 걸어준 것도 결국 어느 날 무심코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우아한 독서가들이 말하던 '저자와 대화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거창하고 철학적인 사색이 아니었습니다. 저자가 활자로 던지는 주장을 내 삶이라는 현실에 한 번 대입해 보는 것. 그래서 내 상황과 맞으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여 취하고, 맞지 않는다면 "당신의 정답은 훌륭하지만, 지금 내 삶에서는 오답이네요"라며 미련 없이 털어내는 것. 그렇게 수많은 문장 속에서 내게 꼭 맞는 조각들만 골라내는 지난한 과정이 바로 진짜 대화였습니다.


수십 년간 책장 앞에서 서성이며, 저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저자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화해하며 저만의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 여전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