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녀석은 참 운이 좋아." 어린 시절부터 가족 모임이나 지인들이 모이는 자리면 아버지는 늘 저를 이렇게 소개하곤 하셨습니다. 큰 탈 없이 대학을 졸업해 번듯한 경찰 공무원이 되었고, 토끼 같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무난한 삶을 꾸려가는 모습이 아버지 눈에는 참 대견하면서도 운이 좋아 보이셨나 봅니다. 특히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났던 인자한 담임선생님 이야기는 저희 집 단골 소재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제 인생에는 '꽃길'만 있었을까요? 곰곰이 복기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라고 왜 가슴팍을 치게 만드는 힘든 선생님이나 억울한 순간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기억들은 안개처럼 흐릿합니다. 중학교 때까지 만난 아홉 분의 선생님 중 제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분은 저를 아껴주셨던 단 두 분뿐입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 믿어왔고, 그 강렬한 믿음은 제 뇌 구조를 좋은 기억만 골라 담는 고성능 필터로 바꿔놓았습니다.
인생은 파도와 같아서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고통의 골짜기도 따릅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겁니다. 남들만큼 넘어졌고, 남들만큼 아팠겠지요. 그럼에도 제 기억의 앨범에는 유독 눈부신 찰나들만 또렷하게 인화되어 있습니다. 우산이 없어 난감해하던 찰나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던 오후, 정류장에 서자마자 미끄러지듯 들어온 버스, 텅 빈 영화관에서 찾아낸 단 하나의 명당자리, 그리고 편의점 진열대에 기적처럼 남아 있던 마지막 허니버터칩 한 봉지까지. 남들에겐 그저 스쳐 지나갈 사소한 우연일지 모르나, 저는 그런 순간마다 주먹을 불끈 쥐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역시, 난 운이 좋다니까!"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그거 정신 승리 아닌가요? 현실 도피 아닌가요?" 물론 모든 결과를 운에만 맡기고 손을 놓아버린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도피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운'은 멈춤의 핑계가 아니라 전진의 발판이었습니다. '나는 잘 될 운명'이라는 확신이 생기자,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운이라는 바람이 불어올 때 돛을 올리는 노력이 더해지자, 인생이라는 배는 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해도, 365일 내내 불행만 쏟아지는 삶은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기억을 내 삶의 주인공으로 앉힐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믿기 어렵다면 오늘부터 아주 작은 행운 하나를 세상에서 가장 큰 사건처럼 기뻐해 보십시오. 나쁜 일은 "그럴 수도 있지" 하며 파도에 씻겨 내려가게 두고, 좋은 일은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마음 곳간에 깊이 간직해 보는 겁니다.
저는 오늘도 참 운이 좋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무심코 펼친 책에서 제 영혼을 울리는 문장을 발견했고, 주차장을 몇 바퀴 돌던 찰나 바로 제 눈앞에서 차 한 대가 빠져나갔습니다. 천 원짜리 커피는 기대보다 훨씬 고소했고, 헬스장에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 기구가 마침 비어 있었죠.
오늘 하루, 정말 제게 '행운'만 가득했을까요?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제 앞을 가로막았을 수도 있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혀를 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에잇' 하고 넘길 일들은 제 기억의 체를 빠져나가 금세 사라졌습니다. 오직 기쁘고 감사한 일들만 제 곁에 오래도록 머물렀습니다.
운도 습관입니다. 좋은 것을 먼저 보고, 좋은 것을 더 오래 기억하는 태도가 습관이 되면 비로소 하루가 달라집니다. 그렇게 제 하루는 즐거운 일들로 촘촘히 채워지고, 저는 또 한 번 기분 좋게 되뇝니다. "역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