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성과 감성이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감성은 대체로 충동적이고, 이성은 그런 감성을 못마땅해하며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찾아냅니다.
최신형 스마트폰이 출시되었을 때가 그렇습니다. 광고를 보다 보면 괜히 사고 싶어집니다. 지름신이 슬며시 다가오는 순간, 이성은 곧장 현실을 들이밉니다. 부담스러운 가격, 아직 남아 있는 할부금,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논리들. 잠시 고민하다 결국 감성이 이기고 구매 버튼을 누릅니다. 그리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통장 잔고를 보며 후회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후회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어느새 이성은 휴대폰을 잘 바꾼 이유를 찾아내며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카메라가 좋아졌고, 속도가 빨라졌고, 어차피 언젠간 바꿨을 거라며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점점 머리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따르는 편이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될 수 있으면 귀찮은 일은 피하고, 늘 걷던 편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공무원이 된 뒤에는 안정적인 노후 보장이라는 이유로 굳이 다른 노력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무탈하게 지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가슴과 머리가 충돌할 일조차 없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이 있었더라도, 머리가 하지 말라고 하면 그대로 멈추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편안함이 길어지자 묘한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 불안은 저를 한 모임으로 이끌었습니다. 강사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보낸 초대에 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잠시 망설였습니다. 혼자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계속 가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 끌림을 따라 모임에 참석했고, 그날 저는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습니다. 그 설렘은 강사의 꿈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강의를 할 때면 여전히 즐겁습니다. 만약 그때 머리가 시키는 대로 가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에도 선택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경기도 안양까지 올라가 경찰관과 시민이 함께하는 ‘독도 플래시몹’에 참여했고, 매달 서울에서 열리는 자기계발 모임에도 참석했습니다.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가지 않으면 더 오래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결과는 늘 비슷했습니다. 선택한 길은 설렘과 만족으로 돌아왔고, 후회는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지 않았을 경우를 상상하면 더 큰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선택이 옳았던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선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보다는, 해보고 겪은 실패가 훨씬 덜 아팠습니다. 실패는 경험으로 남았고, 선택은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미련이 더 오래 남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도박이나 흡연, 과도한 음주처럼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머리를 따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 선택은 하고 난 뒤의 후회가 훨씬 크니까요.
결국 저는 선택의 기준을 이렇게 세웠습니다. “하지 않았을 때의 후회가 더 클까, 해봤을 때의 후회가 더 클까.” 그 질문 앞에서 답이 선명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가슴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집니다.
저는 여전히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남는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결과가 아니더라도, 경험은 반드시 제 것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