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나를 기꺼이 '비워두는' 일이다.

by 오종민

강사 생활 12년 차에 접어들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경찰청 동료강사 제도가 전면 개편되면서, 기존 강사들을 모두 해촉하고 백지상태에서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새로 선발한다는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바늘구멍 같은 선발 과정이었지만, 인권 분야 강사로 다시 지원서를 내는 제 마음속엔 불안함 따위는 1퍼센트도 없었습니다.


당시 제게는 훈장 같은 숫자들이 있었습니다. 2015년 전국 동료강사 경진대회 2위 입상, 5점 만점에 4.8점을 기록하는 압도적인 강의 평점, 그리고 숱하게 들어온 "역시 강의는 최고십니다"라는 찬사들. 이 화려한 이력들이 저를 지켜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나 같은 에이스를 안 뽑으면 누굴 뽑겠어?' 자신감은 이미 오만함에 가까운 확신으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15명의 지원자가 모여 2주간의 합숙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육 전 주까지 8분짜리 인권 강의 모의 시연 과제를 제출해야 했는데, 저는 그동안 닳고 닳도록 해왔던 강의 자료를 짜깁기해 가장 먼저 제출해 버렸습니다. 다른 지원자들의 얼굴에는 피를 말리는 긴장감이 역력했지만, 저는 유독 여유로웠습니다. 평가를 맡은 담당 교수님마저 구면이었기에 어깨는 한껏 더 솟아올랐습니다. 이 긴장감 넘치는 선발장이 마치 저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마련된 독무대처럼 느껴졌습니다. 남들이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수정할 때, 저는 그들이 제 완벽한 강의를 보고 감탄할 모습만 상상하며 이미 다음 주 본 강의 자료까지 느긋하게 만들어 둔 상태였습니다.


마침내 둘째 주 수요일, 교수님 앞에서 4명씩 모의 시연을 하는 날이 밝았습니다. 저는 마지막 순서였습니다. 앞선 발표자들은 노력에 대한 따뜻한 칭찬과 보완점에 대한 부드러운 조언을 받으며 내려왔습니다. 마침내 제 차례가 되었고, 저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당당하게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분이 지나고 2분이 흐를수록 제 시선을 맞받아치는 교수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움직임은 멈췄고, 시선은 날카로워졌습니다. 공기가 얼어붙는 것을 직감한 순간, 여유롭던 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며 템포를 잃었고, 결국 준비했던 멋진 클로징 멘트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채 쫓기듯 발표를 마쳤습니다.


정적을 깨고 교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피드백이 아니라 참혹한 '선고'에 가까웠습니다. “기대가 컸는데, 솔직히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도대체 사람들 앞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순간 뺨을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만큼 지독한 수치심이 밀려왔습니다. 그동안 동료들 앞에서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인 것처럼 여유를 부렸던 제 오만한 행동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같은 조에 속해있던 동료들은 처참하게 무너진 제 자존심을 배려하느라 아무 말 없이 눈치만 보았고, 그 침묵이 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은 최종 선발 테스트 본 강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바닥을 쳐버린 자존심은 옹졸한 방어기제를 작동시켰습니다. ‘저 교수님이 나보다 강사 경력이 짧은데, 내 깊이를 제대로 알기나 할까?’ 하지만 그 찌질한 핑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교만했고, 끔찍하게 안일했습니다. 12년이라는 경력과 타성이라는 껍데기에 갇혀, 정작 청중에게 전달해야 할 알맹이는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한 시간 넘게 빈 노트를 보며 허공만 멍하니 응시했습니다. '그냥 다 포기하고 도망칠까? 하루 만에 이 박살 난 강의를 어떻게 되살리지?' 하지만 저는 다시 펜을 고쳐 잡았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스킬과 기교를 모두 덜어낸 뒤, 처음 인권 강의를 시작하던 12년 전의 그날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왜 이 피곤한 인권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가?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가슴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단 한 문장은 무엇인가?’ 경력을 증명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오직 '메시지' 하나에만 매달렸습니다. 다행히 제 안에는 12년간 현장에서 부딪히며 쌓아온 진짜배기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가차 없이 잘라내고 가장 진실한 이야기만 골라 뼈대를 다시 세웠습니다. 밤 10시, 제 노트북에는 과거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낸 낯설지만 단단한 새로운 강의안이 띄워져 있었습니다.


다음 날 본 강의 테스트 결과, 저는 15명 중 6명만 살아남은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날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합격증이 아니었습니다. 발표된 명단에는 내로라하던 많은 기존 베테랑 강사들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아마도 그들 역시 전날의 저처럼, 자신의 굳건한 경력을 믿고 안일함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나이와 경력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은 맞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새로 흡수할 수 없도록 뻣뻣하게 굳어버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평가할 자격이 있을까?'*라며 잣대질했던 제 오만함이 뼛속 깊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사람은 경험이 쌓일수록 자연스레 단단해집니다. 그러나 그 단단함이 지나치면, 배움이 스며들 작은 틈조차 막아버리는 고집이 됩니다. 저는 그날 밤, 진짜 겸손의 의미를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겸손은 남들 앞에서 내 능력을 깎아내리며 작아지는 위선이 아닙니다. 새로운 배움과 타인의 지혜가 언제든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기꺼이 내 안의 공간을 '비워두는' 가장 위대하고 주도적인 태도입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자신이 못나서가 아니라 그 안에 생명을 가득 채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자연의 섭리일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무리 익숙한 강의장이라도 늘 처음 배우는 사람의 자세로 강단에 섭니다. 상대가 갓 들어온 초심자이건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이건, 배울 점이 있다면 기꺼이 제 안의 빈 공간을 내어줍니다. 나를 비워내는 순간, 우리는 언제나 다시 채워질 완벽한 준비를 마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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