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늘 비슷한 궤도를 돕니다. 낯선 두려움 앞에서 떨다가, 작은 용기를 내어 실행에 옮기고, 그 경험이 마침내 단단한 자신감으로 굳어지는 순환의 반복이죠. 저 역시 그 아득한 순환의 고리를 무수히 통과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특히 내 작은 실수 하나가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거나 내 신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자리에서는, 그 두려움의 무게가 숨을 턱 막히게 할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제 20대 시절, 공군 헌병으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공군 비행단은 그 자체로 거대한 요새이자 하나의 작은 도시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에 아파트, 골프장, 마트까지 갖춰져 있어 차를 타고 외곽을 한 바퀴 도는 데만 꼬박 40분이 걸릴 정도였죠. 저는 그 거대한 도시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출입 통로의 경비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곳은 보안이 곧 생명인 최전선이었습니다. 오가는 수많은 차량과 사람을 매의 눈으로 살피고,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해야 했습니다. 만약 제 실수로 신원 미상자가 부대 안으로 뚫고 들어간다면? 그날로 제 군 생활은 끝나는 것은 물론, 헌병대 영창의 차가운 바닥에 수감될 수도 있는 살얼음판 같은 자리였습니다.
처음 그 무거운 철모를 쓰고 초소에 섰을 때, 솔직히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은 온데간데없고, ‘순간의 방심으로 실수해서 영창에 가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가 덜컥 제 목을 조였습니다.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고, 한 번 미끄러지면 천길낭떠러지인 자리. 두려움이라는 놈은 한 번 마음속에 똬리를 틀자 거침없이 부풀어 올랐고, 제 머릿속을 온통 최악의 시나리오로 도배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사시나무 떨듯 두려움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속으로 백 번 천 번 "나는 잘할 수 있다, 완벽하게 해낼 거다"라고 외쳐보았지만, 억지로 욱여넣은 긍정의 주문은 심장 박동을 조금도 늦춰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소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던 중, 문득 제 머릿속에 아주 엉뚱하고도 현실적인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가만있자. 지금까지 이 초소를 거쳐 간 헌병 선배들이 수만 명은 족히 될 텐데, 그들 대부분 사고 없이 무사히 제대했잖아? 설마 내가 그 수만 명 중에서 최악의 꼴찌겠어? 중간만 가도 영창은 안 가겠네.’
그 치기 어리고 엉성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던 바위 같은 압박감이 거짓말처럼 스르르 녹아내린 것입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나는 최악의 꼴찌는 아닐 것이다'라고 스스로 기대치를 한 칸 내려놓자, 두려움이 더 이상 저를 마비시키지 못했습니다. 제 눈앞에 닥친 임무가 생각보다 아주 단순하고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꼴찌는 아닐 거야'라는 그 투박한 자기 위안은 어느새 '그러니 나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단단한 확신으로 바뀌었고, 저는 단 한 번의 보안 사고 없이 그 막중한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얻은 작고 단단한 깨달음은 이후 23년의 경찰 생활 내내 저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었습니다. 남들이 모두 고개를 내젓는 험난한 기피 부서로 발령이 났을 때도, 낯선 업무 앞에서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저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시절의 주문을 꺼내 들었습니다. ‘여기서도 나는 절대 꼴찌는 아닐 거야.’ 그 한마디는 무너질 것 같은 저를 버티게 했고, 결국 그 낯선 환경마저 완벽하게 장악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물론 매사에 ‘나는 잘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극에 달했을 때, 맹목적인 긍정 확언은 가끔 독이 됩니다. 거대한 건물을 지을 때 바닥의 기초 공사가 단단해야 굵은 기둥을 세울 수 있듯, 긍정의 기둥을 세우기 전에는 두려움부터 덜어내는 마음의 기초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게 그 완벽한 기초 공사는 "나는 최악은 아닐 것이다"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위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