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저는 '편견'이라는 짙은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섣불리 재단하곤 했습니다. 단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 없으면서, 찰나의 스쳐 가는 행동과 표정 몇 번만으로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정의해 버린 것입니다. ‘아, 저 사람은 별로네.’ 그 판단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단호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제 좁은 시선이 만들어낸 왜곡된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몇 해 전, 강사들을 위한 역량 강화 워크숍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그는 늘 강의실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수업이 시작되면 딴청을 피우기 일쑤였습니다. 노트북을 열어 타닥타닥 다른 업무를 보거나, 불쑥 자리를 비우고 나가버리기도 했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강사 입장에서, 맨 앞자리에 앉은 수강생의 그런 태도가 얼마나 기운 빠지고 모욕적인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저였습니다. 제 속에서는 불쾌감이 일었습니다. 말을 나눠본 적은 없었지만, 이미 제 마음속 법정에서 그는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거만한 강사’로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다른 행사에서 몇 번을 더 마주쳤지만, 그저 건조한 목례만 나눌 뿐 곁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또 다른 워크숍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분위기는 여전히 어색했습니다. 워크숍 마지막 날, 세 명의 강사가 시범 발표를 하게 되었고 그중 한 명이 바로 저였습니다. 긴장 속에 발표를 마치고 모든 일정이 끝났을 때, 짐을 챙기던 제게 누군가 먼저 다가왔습니다. 바로 그 남성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향해 아주 환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강의 정말 잘 들었습니다. 흡인력이 대단하시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순간, 저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당황했습니다. 입에 발린 인사가 아니라, 묵직한 진심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목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저는 간신히 고개를 숙였지만, 그 짧은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지독한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동안 제가 그를 얼마나 오만하고 편협한 시선으로 난도질하고 있었는지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를 몇 번 더 겪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색안경을 벗고 바라본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강의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고, 까마득한 후배 강사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조언을 구하는 겸손함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며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아, 2년 전 그날 앞자리에서 노트북으로 하던 일은 강사로서 정말 피할 수 없는 다급한 업무였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강의 내용을 하나라도 더 기록하려던 열정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저는 그의 사정은 묻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저 제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붉은색 안경을 끼고 무지개를 바라보면 세상은 온통 붉게만 보일 뿐입니다. 저는 제 멋대로 만든 단 하나의 색으로 그 사람의 다채로운 인생을 덮어버렸던 것입니다.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고 미워한다고 해서 당장 삶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동료와, 친구와,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의 잘못된 시선 하나가 소중한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게 합니다. 무엇보다, 그 사람과 교감하며 얻을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와 시너지를 영영 앗아가 버립니다.
우리가 타인을 판단하고 정답을 내리는 데는 빛의 속도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오만했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행동이 거슬리고 미워지려 한다면, 비난의 칼을 빼들기 전에 마음속에 작은 빈칸 하나를 남겨두면 어떨까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편견은 결코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못합니다. 그저 세상을 온전하고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나의 시력을 앗아갈 뿐입니다.
여러분이 선입견 때문에 차갑게 등 돌렸던 그 사람이, 어쩌면 여러의 인생을 눈부시게 바꿔줄 최고의 귀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편견을 벗어던지는 연습은 타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더 넓고 옳은 세상으로 걸어가기 위한 가장 위대한 첫걸음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저 영롱한 무지개를, 무지개답게 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