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갇힌 인생에서 벗어나 경험을 수집하는 삶으로

by 오종민

"전 이미 늦은 것 같아요." "제 나이가 몇인데 이제 와서 그런 걸 새로 배워요." "딱 십 년만 젊었어도 당장 해봤을 텐데." 새로운 시도나 가슴 뛰는 공부를 앞두고, 혹시 나이라는 장벽 뒤로 슬며시 숨고 계시진 않나요? 제 주변에도 습관처럼 나이 타령을 하며 스스로 한계를 긋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올해로 쉰 살, 지천명(知天命)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조금 늦었다고 혀를 끌쯧 찰 나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제 인생에 '배우기에 늦은 나이'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저는 글을 쓰고, 강연 무대에 오르며, 유튜브 영상을 기획합니다. 그뿐인가요? 아마추어 연극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다른 사람의 삶을 연기하고, 헬스와 수영, 축구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땀을 흘립니다. 최근에는 챗GPT, 제미나이(Gemini) 같은 최신 AI 도구들의 매력에 푹 빠져, 젊은 친구들 못지않게 밤을 새워가며 적극적으로 파헤치고 있죠. 가슴이 뛰고 재미있어 보이는 일 앞에서는 머리로 계산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립니다.


물론 저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불도저처럼 열정 넘치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저는 그저 주말의 적당한 여가를 즐기는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경찰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주는 견고하고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굳이 피곤하게 담장 밖의 낯선 세상으로 모험을 떠날 이유를 찾지 못했죠. 하지만 모순되게도, 내일이 완벽하게 예측되는 평온한 일상이 반복될수록 제 안의 무언가가 서서히 메말라갔습니다. 마치 물이 고여 썩어가는 것처럼 원인 모를 공허함과 갈증이 밤마다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연히 한 강연자가 무대 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강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무대를 향한 열망이 가슴속에서 요동쳤습니다.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다.' 그 뜨거운 끌림 앞에서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나 나이라는 핑계가 끼어들 틈조차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무작정 그 길로 뛰어들었고, 여전히 가슴 뛰는 삶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세상에는 우리가 아직 맛보지 못한 경이로운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습니다. 그 즐거움을 채 누려보지도 못하고 지레 짐을 싸버린다면 내 인생에 얼마나 미안한 일일까요? 저는 쉰 살이 된 올해도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 같습니다. 제 이름 세 글자가 박힌 책을 세상에 내놓을 것이고, 직접 다루는 AI 기술을 접목해 틱톡과 유튜브에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것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더 이상 진부한 위로가 아닌, 생생한 현실이 되는 시대입니다. 71세의 나이에 치매를 예방하려 손녀와 여행을 떠났다가 수백만 명에게 영감을 주는 크리에이터가 된 박막례 할머니를 보십시오. 80대의 나이에도 "나이 들어도 괜찮아!"라며 세상을 향해 당당히 외치는 배우 선우용녀 님은 또 어떻습니까? 그들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조차 압도하는 에너지로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포드 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무 살이든 여든 살이든 배우기를 멈추는 사람은 늙은 것이다. 계속 배우는 사람은 누구나 젊음을 유지한다." 제가 지금 20대 못지않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비결도, 결국 낯선 배움을 즐거워하고 무모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제가 나이를 핑계로 이 모든 도전을 멈춘다면, 저는 또다시 과거의 그 숨 막히도록 안전하고 공허했던 일상으로 가라앉아 진짜 '노인'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흥겨운 유행가 가사가 귓가를 맴돕니다. 저는 두 다리로 이 세상에 굳게 발 딛고 있는 그날까지, 저를 가로막는 모든 편견을 향해 자신 있게 외칠 것입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가슴 뛰는 일, 미치게 재밌는 거 새로 시작하기에 지금이 딱 좋은 나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