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찌른 칼로 내 상처를 후벼 파지 않겠다

by 오종민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배신의 쓴맛을 삼키게 될까요? 단골 식당의 음식 맛이 변하거나 친구가 가볍게 약속을 어기는 식의 소소한 배신은 일상에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삶을 흔드는 위기는, 굳게 믿었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차갑게 등을 돌릴 때 찾아옵니다. 맹세했던 연인이 떠나가거나, 피도 눈물도 없는 금전과 이권 다툼 앞에서 사람들은 참으로 쉽게 서로를 저버립니다.


배신의 칼날에 찔린 사람들은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 괴로워합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매일 밤 술에 기대거나,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상대방 혹은 자기 자신을 해치려 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밑바닥을 다 드러내며 절규한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내 영혼만 더 비참하게 곪아갈 뿐입니다.


그렇다면 배신한 사람들은 어떨까요? 속이 뒤집히게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잘 살아갑니다. 만약 배신당한 이가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한다 해도, 그들은 아주 찰나의 얄팍한 죄책감을 느낄 뿐 금세 '어쩔 수 없었던 타인의 불행'으로 치부해 버리고 맙니다.


어느 날, 한 대학교 특강에서 강연을 마칠 즈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물었습니다. "교수님, 수많은 사람을 겪어오셨다고 했는데, 만약 교수님이 처절하게 배신당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순간 강의실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예상치 못한 묵직한 질문이었지만, 저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마이크를 쥐고 답했습니다.


"저는 절대 슬퍼하거나 제 삶을 무너뜨리지 않을 겁니다. 밤잠 설치며 힘들어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나'라는 이렇게 진실하고 좋은 사람을 잃어버린 그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기어코 더 잘 살아낼 겁니다. 훗날 그가 저를 우러러보며 '아, 그 사람을 놓친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구나' 하고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말입니다."


사람들은 왜 배신당했을 때 그토록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괴로워할까요? 그 기저에는 '내가 이렇게 바닥을 기며 아파하면, 그 사람이 내 소중함을 깨닫고 미안해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숨어 있습니다. 철저히 망가진 내 모습을 통해 상대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는, 일종의 자기 파괴적인 복수심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은 지독한 착각이자 헛된 바람입니다. 사람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이들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고통에 관심조차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좇아 움직였을 뿐이니까요. 오히려 당신이 매달리고 아파할수록, 그들은 자신이 떠난 이유를 기가 막히게 합리화합니다. *"거봐, 내가 떠난 건 네가 나를 지치게 했기 때문이야", "네가 매달리는 걸 보니 정떨어진다"*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떳떳해지려 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어코, 악착같이, 보란 듯이 잘 살아야만 합니다. 주저앉아 우는 것은 나를 찌르고 도망간 사람의 칼을 주워다 내 손으로 내 상처를 더 깊게 후벼 파는 미련한 짓입니다. 내 목숨과 인생을 담보로 상대를 옭아매려 해봤자 돌아오는 건 더 싸늘한 조소뿐입니다.


여러분의 귀한 인생이 고작 배신자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도구로 쓰이게 두지 마시길 바랍니다. 떠난 사람에게 진정으로 복수하고 싶다면, 그가 알던 과거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면의 단단함을 키우고, 지식이든 경제력이든 스스로의 가치를 무섭게 끌어올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맹렬하게 갈고닦아 눈부시게 빛날 때쯤, 어느새 여러분은 그들보다 아득히 높은 곳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를 배신했던 그 인간이, 사실은 내 인생과 감정을 걸 만큼 대단하거나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었구나'라는 통쾌한 진실을 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깊은 상처를 딛고 일어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완벽한 복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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