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페이스북에 무심코 첫 글을 남기며 시작된 기록의 여정은 블로그와 브런치를 거치며 제 삶의 중요한 의식이 되었습니다. 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 제가 닿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습, 그리고 마음의 파도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적어 내려갔습니다. 처음엔 그저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쏟아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무심코 던진 그 활자들이 거대한 그물이 되어 저를 단단히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기장에 몰래 적는 글과, 타인의 시선이 닿는 광장에 내거는 글은 그 온도부터가 다릅니다. 혼자 보는 글은 내용이 한없이 찌질하든 거창하든 저만 눈감아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공개되는 글은 일종의 선언입니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봅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는 일과 같습니다. 일단 활자로 박아 세상에 내놓고 나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압박이 시작됩니다. '네가 쓴 글대로 살고 있느냐'는 세상의, 그리고 저 자신의 서늘한 질문이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글을 통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읽어냅니다. 만약 누군가 인권이나 소통, 배려 같은 숭고한 가치를 역설하면서 정작 현실의 삶은 그와 정반대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들은 “말이나 못 하면”이라며 차갑게 냉소할 겁니다. 특히 저처럼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교육을 하는 강사라면, 대중은 '메시지(글)'의 훌륭함보다 '메신저(사람)'의 진실성을 먼저 저울질 할겁니다. 메신저의 삶이 메시지를 배반하는 순간, 아무리 빛나는 진리라도 그것은 역겨운 위선으로 전락하며 청중은 즉각 마음의 문을 걸어 잠글겁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이의 잘못보다, 평소 바른 말을 하고 선한 글을 쓰던 사람의 위선에 훨씬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높은 단상에 서 있던 사람이 추락할 때 묘한 희열을 느끼는 대중의 심리 때문입니다. 결국, 글쓴이가 내세웠던 긍정적이고 정의로운 가치들은 가장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목을 겨누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글을 발행하는 '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 늘 침을 꼴깍 삼키며 자문합니다. '나는 지금 이 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가? 나의 삶은 이 문장을 배반하지 않고 있는가?' 실천이 결여된 글은 그저 허공에 흩어지는 위선일 뿐입니다. 때로는 이 엄격한 검열이 무거운 족쇄처럼 느껴져 '차라리 쓰지 말까' 하고 키보드를 밀쳐낸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탈선하지 않도록 멱살을 쥐고 바른길로 끌어다 놓은 것은 언제나 제가 쓴 '저의 문장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감정을 가진 평범한 사람인지라, 억울한 일이나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면 SNS에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뾰족한 댓글을 달고 싶어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맴돌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욱하는 마음에 엔터키를 치려는 찰나, 흠칫 놀라며 손을 거둬들였습니다. '책임질 줄 알고, 타인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 내가 글로써 세상에 선언하고 빚어온 저의 정체성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저서 《설득의 심리학》에서 이를 정확히 꼬집었습니다. "사람은 한 번 어떤 입장을 취하거나 공개적으로 선언하면, 그 결정에 일치되게 행동하려는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특히 타인에게 공개된 글로 남기는 '공개 선언(Public Commitment)'은 빼도 박도 못하는 물리적 증거가 되어 스스로에게 강력한 책임감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에 뼛속 깊이 공감합니다.
자신의 선언과 실제 행동이 엇박자를 낼 때, 인간은 지독한 심리적 불편함(인지부조화)을 겪습니다. 뇌는 제가 내뱉은 이상적인 문장과 현실의 초라한 제 모습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채찍을 휘두릅니다. 그 고통스러운 교정의 과정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가끔 온라인에서만 소통하던 페이스북 지인을 현실에서 처음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들이 환하게 웃으며 "우와, 글에서 느껴지던 분위기가 현실에서도 똑같으시네요!"라고 말해줄 때면, 그간의 심리적 압박이 짜릿한 보람으로 치환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글쓰기가 제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단순히 글솜씨가 늘었다거나 좋은 평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인 언어를 벼리고 다듬는 과정에서 저의 '정체성' 자체가 재설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나를 적어 내려가며 책임질 줄 알고, 먼저 사과할 줄 알며, 분노에 휩쓸리지 않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으로 저를 진화시켜 왔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흔들리고, 모든 감정을 완벽히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활자로 내뱉음으로써 한 번 더 멈춰 서서 생각할 수 있는 브레이크를 얻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영원히 될 수 없겠지만,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은 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 그것이 제가 오늘도 기꺼이 이 아름다운 족쇄를 차고 글을 쓰는 이유입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