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라는 이름의 든든한 뒷배

by 오종민

책임지는 리더와 그렇지 않은 리더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저는 위기나 실수가 발생했을 때, 그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갈라진다고 믿습니다. 책임지는 리더는 거울을 보며 "제 잘못입니다. 제가 다 감당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반면, 책임을 회피하는 리더는 창밖을 보며 "누가 잘못한 겁니까?"라며 희생양을 찾기 바쁩니다. 일을 대하는 태도 역시 전자는 적극적이고, 후자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23년의 경찰 생활 동안 저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뼈저리게 겪었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제 경찰 인생의 첫 단추를 '책임지는 리더'와 함께 꿰었다는 사실입니다.


순경 1년 차, 병아리 경찰관 시절의 일입니다. 당시 저희 파출소 직원들의 평균 나이는 30대 중반을 훌쩍 넘겼는데, 경찰대 출신의 20대 중반 앳된 경위님이 신임 파출소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우려와 달리 그는 노련한 선배들을 깊이 존중했고, 실적을 앞세워 무리한 지시를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악성 민원인의 끝없는 폭언이 쏟아지고 있었고, 저는 어쩔 줄 몰라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소장님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수화기를 건네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가 파출소장입니다. 앞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면 직원 괴롭히지 마시고, 책임자인 저에게 직접 전화하십시오."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그의 등 뒤로 거대한 후광이 비치는 듯했습니다. 그는 놀란 저희를 향해 덤덤히 덧붙였습니다. "앞으로 곤란하고 어려운 일은 모두 제가 맡겠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그 한마디는 팍팍했던 파출소의 공기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내 뒤에 든든한 방패가 있다는 사실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희는 오히려 '우리 소장님이 다치지 않게 하자'며 자발적으로 더 뛰었고, 골칫거리였던 민원 건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한번은 파출소 실적이 저조해 소장님이 경찰서장님께 호된 질책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파출소로 돌아와서도 어떤 내색이나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묵묵한 뒷모습에 저희는 묘한 부채감과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우리 소장님이 윗선에 깨지게 만들지 말자." 직원들이 똘똘 뭉쳐 밤낮없이 뛴 결과, 다음 평가에서 우리는 당당히 성과 1등을 거머쥐었습니다. 저는 그때 결심했습니다. 훗날 나도 저런 멘토 같은 리더가 되겠다고 말입니다.


같은 해, 제 가슴에 또 한 명의 멘토를 새겨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경사 선배님과 출동한 현장에서, 안타깝게도 사람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현장 조치는 매뉴얼대로 신속하게 이루어졌지만, 경찰 조직의 특성상 강도 높은 감찰 조사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습니다.


경찰복을 입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제게 '감찰'이라는 단어는 숨이 턱 막히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행여나 내 실수로 일이 잘못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때, 선배님이 제 어깨를 툭 치며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현장 책임자는 나니까,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다 안고 간다. 넌 그저 선배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있는 그대로만 말해라."


그 순간, 어린 순경의 어깨를 짓누르던 집채만 한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조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날 선배가 제게 씌워준 '책임이라는 이름의 우산'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물론, 정반대의 경험도 있습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기에 급급한 팀장, 혹은 선배들과도 일해봤습니다. 그들은 혹여나 불똥이 튈까 봐 늘 방어적이고 수동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복지부동의 표본이었습니다. 만약 문제가 터지면, 사태 해결보다 꼬리 자르기를 할 희생양을 찾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일할 때면 조직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제 안의 열정도 서서히 식어갔습니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고통스러웠고, 자연스레 모두가 기피하는 부서가 되어버렸습니다.


책임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결정적으로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면 오히려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설령 문제가 터지더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훨씬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동료들의 진심 어린 존중과 지지가 뒤따르기에, 어떤 위기도 함께 돌파해 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란 단순히 십자가를 짊어지는 무거운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삶과 업무의 진짜 주인이 되어, 주변에 더 크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순경 시절 만났던 두 선배님 덕분에 저는 진짜 리더의 품격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제가 후배들에게 그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명언 중 제 뼈를 때렸던 한마디가 있습니다. "네가 후배들보다 월급을 몇십만 원이라도 더 받는 이유는, 딱 그만큼 더 책임지라는 뜻이다."


오늘도 저는 후배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 말을 던지곤 합니다. 그리고 제 입 밖으로 꺼낸 그 말의 무게를 증명하기 위해, 오늘도 기꺼이 책임의 맨 앞줄에 서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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