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잃은 자존심은 기어코 독이 된다.

by 오종민

수영을 배운 지 어느덧 6개월 차, 저는 현재 고급반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물살을 가르는 속도는 더디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오릅니다. 함께 레인을 쓰는 분들은 기본 경력이 3년 이상 된 베테랑들인지라, 제가 감히 따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수영은 보통 실력순으로 서서 출발하는데, 저는 늘 맨 뒤에서 1, 2등을 다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급반에서 두 명이 고급반으로 올라왔습니다. 어릴 적 수영을 배운 덕에 오랜만에 수영장을 찾았음에도 금세 감을 되찾고 월반을 한 것입니다. 강사님은 단번에 그들의 실력을 파악하고는, 기존 멤버인 제 앞으로 그들을 배치했습니다.


그 순간, 수영장 특유의 습한 공기 위로 묘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몇몇 분들은 '굴러온 돌'이 앞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해 못마땅한 눈치를 보였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속으로 살짝 부끄러움이 일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 실력이 그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거기서 제가 "내가 고급반 터줏대감인데!"라며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워 앞자리를 고집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뒤따라오는 사람과 부딪혀 사고가 났거나, 레인 전체의 흐름을 끊어먹는 민폐를 끼쳤을 겁니다. 이는 조기 축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보다 늦게 들어온 신규 멤버가 뛰어난 실력으로 단숨에 공격수 자리를 꿰찼을 때도, 저는 기꺼이 박수를 치며 수긍했습니다. 내 위치를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전체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첫걸음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존심을 내세워 자신의 현주소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마주합니다. 강사로 활동하며 교육 현장에 서다 보니 이런 모습은 더욱 뚜렷하게 보입니다. 강의 경력 10년이 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력보다 훈장을 앞세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보다 경력이 짧은 교수가 강단에 서면 은근히 무시하거나, 수업 중 불쑥 끼어들어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려 듭니다. 하지만 화려한 포장을 뜯고 그들의 뚜껑을 열어보면, 정작 알맹이는 텅 빈 '빈 수레'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자존심(自尊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방어적이고 경쟁적인 감정입니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지만, 실상은 외부의 평가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내 가치를 억지로 증명해 내려는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타인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억지를 부려서라도 우위에 서려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존재 가치의 하락'으로 착각해 진심 어린 사과조차 하지 못합니다. 타인의 건강한 피드백조차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며 날을 세우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 역시 그런 오만한 강사들처럼 자존심을 부리다 크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얄팍한 경력과 실력만 과신한 채 제대로 된 연습 없이 무대에 올랐던 그날. 청중들의 싸늘한 눈빛 앞에서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고, 등줄기엔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렀습니다. 나를 지켜줄 거라 믿었던 알량한 자존심은, 조명 아래 벌거벗겨진 저를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게 막는 족쇄였을 뿐입니다.


그날의 뼈아픈 경험 이후, 저는 자존심의 사용법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대신, 현재의 부족한 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빈틈을 채우는 '동력'으로 자존심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수영장 앞자리를 내어준 사건도 제게는 훌륭한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그래, 명색이 고급반인데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지!'라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틈날 때마다 유튜브로 자세를 연구하고 주말에도 수영장을 찾아 물살을 가릅니다.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저보다 나이가 어리든 경력이 짧든,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가 생기면 체면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다가가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렇게 고개를 숙였더니, 오히려 어제보다 한 뼘 더 성장한 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자존심이라는 칼날은, 누구를 향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타인을 향해 들이밀면 관계를 망치는 '아집과 독'이 되지만, 나 자신을 향해 겨누면 성장을 벼리는 '품격과 약'이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 자존심을 어느 방향으로 겨누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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