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by 오종민

제가 근무하는 지구대의 평균 신고 출동 시간은 5분 남짓입니다. 도심권은 3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하기도 하지만, 거리가 먼 외곽 지역은 10분을 훌쩍 넘길 때도 있습니다. 순찰차의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도,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는 데는 한계가 있죠.


출동이 4분쯤 경과하면 어김없이 상황실을 통해 재촉 신고가 떨어집니다. 다른 사건을 처리하느라 늦어지거나 거리가 멀 때, 저희는 다급해할 신고자에게 미리 전화를 겁니다. "다른 신고 처리 때문에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처음에는 수긍하던 신고자도 3분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면 폭발하고 맙니다. "도대체 언제 오는 겁니까!" 수화기 너머로 날 선 분노가 쏟아지죠. 이때 경찰관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뉩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라며 진땀을 빼거나, 혹은 "아까 좀 늦는다고 말씀드렸잖아요"라며 억울함을 내비치는 것입니다. 결국 애가 타도록 기다린 신고자는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신고 처리 만족도에 낙제점을 매겨버리고 맙니다.


비단 경찰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수많은 서비스 현장에서 고객을 향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이 습관처럼 쓰입니다. 고객은 처음엔 얌전히 기다립니다. 하지만 5분이 넘어가면 조바심이 나고, 10분이 지나면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라는 퉁명스러운 질문에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했잖아요"라는 까칠한 대답이 돌아오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잠시만'이라는 시간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길이일까요? 말을 건네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10분이든 20분이든 그저 업무의 연장선에 있는 '잠시'일 뿐입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의 시계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시계를 쳐다보며 "1분이 왜 이렇게 안 가지?"라고 느껴본 적 있으실 겁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라는 불확실성 속에서는 단 1분조차 10분처럼 아득하고 끈적하게 늘어집니다. 결국 '잠시만', '조금만', '금방'과 같은 모호한 표현은 소통의 윤활유가 아니라 오해와 갈등의 불씨가 됩니다. 기다리는 쪽은 곧 해결될 것이란 기대로 버티다 자신을 방치한다는 생각에 분노하고, 응대하는 쪽은 "양해를 구했는데 왜 저러지?"라며 억울해하는 평행선이 그어지는 것이죠.


각자의 입장에서 엇갈리는 이 애매한 소통을 끊어내려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가 먼저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해결책은 아주 간단합니다. 모호한 부사를 치워버리고 '명확한 숫자'를 건네는 것입니다.

"먼저 오신 분의 업무를 처리하는 데 약 5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단 5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이 제시되는 순간,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림을 감수합니다. 왜 그럴까요? 기다릴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과 상황에 대한 '통제권'이 온전히 자신에게 넘어왔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시간이 20분으로 길어진다 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기다리겠다" 혹은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결정하는 주체는 이제 방문객 본인입니다. 스스로 내린 선택이기에 20분을 꼬박 기다리더라도 쉽게 불만을 터뜨리지 않습니다. 만약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될 것 같다면, 중간에 다가가 "죄송합니다만, 3분 정도 더 소요될 것 같습니다"라고 상황의 진척을 공유해 주면 됩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 갈등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두려워합니다. 육체적인 고통조차 끝나는 시점을 알면 이를 악물고 견뎌낼 수 있듯, 기다림의 지루함 역시 명확한 한계선이 그어지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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