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경찰 조직 내에서 페이스북은 아직 낯선 세계였습니다. SNS의 가장 큰 마력은 굳건한 현실의 계급과 장벽을 단숨에 허물어버린다는 데 있었죠. 평소라면 결재판을 들고 서장실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을 일개 경사가, 온라인에서는 전국 각지의 경찰서장, 심지어 청장님들과도 격의 없이 '친구'를 맺고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화면 너머로 오가는 댓글 속에서는 제복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고, 오프라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먼저 알은체를 하며 웃음 지을 만큼 그들과의 거리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어느새 저는 동료들 앞에서 은근슬쩍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 서장님? 나랑 페북에서 자주 얘기하잖아", "청장님이 내 글에 좋게 댓글 달아주셨더라." 동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을 때면, 순간 제가 마치 대단한 위치에라도 오른 것처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습니다. 경찰 지휘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밖에서 조금이라도 이름을 떨치는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이름을 들먹이며 저를 포장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혼자 남은 시간, 스마트폰 화면이 꺼지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했습니다. 그건 진짜 제 모습도, 진짜 제 인맥도 아니었으니까요. 단지 그들의 후광이 제 가치를 높여줄 것이라는 얄팍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대화 중 의도적으로 유명인이나 권위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자신을 포장하는 행동을 **'네임 드로핑(Name-dropping)'**이라고 부릅니다. 타인의 성공이나 명성에 나를 슬쩍 얹어, 마치 내가 그 영광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이려 하는 것이죠. 이런 방어기제는 왜 작동할까요? 바로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굴뚝같은데, 스스로의 능력만으로는 그만큼 인정받기 어렵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은 타인의 이름표를 빌려오지 않습니다. 내면이 빈약할수록 유명인의 '후광'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려 합니다. 하지만 그 가면은 곧 한계를 드러냅니다. 처음엔 제멋대로 부풀려진 허세에 속아 넘어가던 사람들도, 이내 텅 빈 실체를 알아채고 맙니다. 신뢰는 깨지고 '허풍 심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진짜 관계마저 멀어지게 되죠. 더 큰 문제는 스스로가 겪는 좌절입니다. 남의 뒤에 숨으려 할수록 초라한 진짜 내 모습과 직면하게 되고, 결국 자존감은 바닥을 쳐 정상적인 삶의 궤도마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들의 빛을 빌려 나를 더 밝게 비추려 했습니다. 그 빛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었죠. 하지만 남에게서 빌려온 빛은 잠시 나를 비출 뿐, 결국 스위치를 끄면 사라지고 마는 허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진짜 원했던 것은 그들과의 화려한 인맥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외롭고 여린 마음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마주하고 나자, 타인의 이름 뒤에 숨으려 발버둥 치던 과거의 제 모습이 비로소 안쓰럽고 따뜻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은 지금도 누군가의 화려한 이름을 빌려 저를 과시하고 싶은 유혹이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이제 그 흔들림은 길지 않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운전대를 누가 잡고 있느냐입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저는 이미 23년이라는 치열한 현장을 버텨낸 '저'라는 사람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끄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남의 이름 석 자가 아니라, 스스로 묵묵히 쌓아 올린 경험과 단단한 내면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