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아닌 '성취감'을 관리하다

by 오종민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시간 관리'를 강요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젠하워 매트릭스' 같은 거창한 이론이나, 촘촘하게 칸이 나뉜 '프랭클린 플래너'가 불티나게 팔리죠.

책에서 시키는 대로 야심 차게 다이어리를 사서 시간대별로 할 일을 빼곡히 적어 봅니다. 하지만 며칠 못 가 빈칸이 늘어나고, 그 일정들을 온전히 소화하기란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SNS나 책 속에서 이런 완벽한 방법으로 성공한 이들을 볼 때마다 오히려 상실감만 커집니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어느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 없이 자괴감만 쌓이죠.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저는 '환경과 출발선의 차이'를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이들도 처음부터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살진 않았을 겁니다. 수많은 시도와 뼈아픈 실패를 겪으며 자신의 현실에 딱 맞는 옷을 찾아낸 결과물일 테죠. 그런데 우리는 계단에 발을 올리기도 전에 저 높은 꼭대기만 올려다봅니다. 시야가 아득해지니 쉽게 지치고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자기계발서를 덮으며 '나는 안 되나 보다'라고 자책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분 단위로 시간표를 짜고 기계처럼 실천할 자신이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예기치 못한 변수마저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23년간 온갖 돌발 상황이 난무하는 현장을 겪어본 제 입장에선 그렇게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삶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거창한 이론 대신, 누구나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저만의 '투박하지만 확실한' 시간 관리 방식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저처럼 남들의 완벽한 다이어리 앞에서 주눅 들어본 분들이라면 분명 작은 돌파구가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숨이 턱 막혔습니다. '강의 자료 수정, 부탁받은 교재 원고 작성, 유튜브 영상 편집, 개인 글쓰기, 그리고 매일 하던 운동까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제 목을 조여오는 듯했습니다.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마음만 조급해져 도무지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죠.


심호흡을 하고 저만의 방식대로 엉킨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현실적인 우선순위와 과감한 포기'입니다. 가장 시급한 일과 오늘 당장 하지 않아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일을 나눴습니다. 급한 일이 여러 개라면, 그중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놈'을 첫 타자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운동'을 그날의 목록에서 지웠습니다. 운동에 쓰이는 2시간을 비우면 다른 시급한 업무 두 개는 거뜬히 해치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 미뤄둔 일에는 반드시 새로운 마감일을 정해두었습니다. 마냥 미루기만 하면 훗날 이자까지 붙어 눈덩이처럼 돌아와 수습이 불가능해지니까요.


두 번째 단계는 '눈으로 확인하고 펜으로 그어버리기'입니다. 저는 할 일을 머릿속에 두지 않고 무조건 노트에 큼지막하게 적습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은 뜬구름 같아서 쉽게 형태가 바뀌고 증발해 버립니다. 나중엔 '뭘 해야 했더라?' 하며 불안감만 남죠. 하지만 글씨로 적어 내려가는 순간, 그 생각은 물리적인 실체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를 끝낼 때마다 펜으로 시원하게 쫙! 줄을 그어 지워버립니다. 이때 손끝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성취감은 다음 일을 해치울 강력한 원동력이 됩니다. 하나를 예상보다 일찍 끝내면 묘한 여유까지 생겨나 변수마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나만의 훈장 달아주기'입니다. 매일 해낸 일들을 스마트폰 캘린더에 색깔로 기록하는 겁니다. 복잡하게 적을 필요도 없습니다. '글쓰기(파란색), 운동(노란색), 유튜브(핑크색), 강의 준비(보라색)'처럼 키워드에 음영을 입혀 달력을 채웁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알록달록하게 채워진 달력을 보면, 그날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낸 저 자신에게 훈장을 달아주는 기분이 듭니다. 다음 날도 이 예쁜 색깔로 빈칸을 채우고 싶다는 묘한 승부욕과 의욕이 솟아납니다. 한 달 뒤, 색종이 조각을 붙여놓은 듯 빽빽하고 화려한 달력을 마주할 때의 그 벅찬 감동을 상상해 보십시오.


무엇이든 처음엔 만만하고 쉬워야 의욕이 생깁니다. 타인이 고안한 완벽한 시스템을 억지로 욱여넣으려다 체하지 마십시오. 나만의 작고 투박한 방식을 만들어 첫 성취를 맛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성취감과 자신감이 복리처럼 쌓이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시간 관리는 24시간을 빈틈없이 쪼개 쓰는 기술이라기 보단 오늘 하루, 내가 해낼 수 있는 작은 일에 집중하며 '나의 성취감'을 관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의 달력엔 어떤 색이 채워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타인의 조명을 끄고 나의 빛을 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