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메며 얻은 흉터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by 오종민

요즘은 그야말로 '모르면 바로 알 수 있는' 세상입니다. ChatGPT나 제미나이에게 묻거나, 주머니 속 스마트폰만 꺼내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정답이 쏟아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사람들은 '모른다'는 막막한 상태에 단 1분도 머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분명 방금 검색해서 읽었는데 뒤돌아서면 기억나지 않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것 같았는데, 막상 누군가에게 설명하려 하면 말문이 턱 막힙니다. 정보는 홍수처럼 넘쳐나는데, 정작 내 안에 단단하게 남는 지식은 점점 말라가는 느낌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예전에 한 후배에게 업무 중 발생한 특정 상황을 제시하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질문을 받은 지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후배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선배님, 이거 어떻게 하면 되죠?" 저는 바로 답을 주는 대신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네가 그 상황에 부딪혔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순간 후배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잠시 멈칫하더니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 후배가 정말 능력이 부족해서 몰랐던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에, 외부에서 '정답'을 찾는 것이 습관이 되어 생각의 스위치 자체를 꺼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답을 '찾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 답을 '묻는' 요령만 배우고 있습니다. 고민의 흔적과 치열함이 생략된 채 말입니다.


쉽게 얻은 정보가 안개처럼 금세 사라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뇌는 아주 현실적이고 경제적이어서,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클릭 몇 번으로 쉽게 얻은 정보는 '스쳐 지나가는 불필요한 데이터'로 취급해 금방 삭제해 버립니다.


제가 경무계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낯선 업무들 투성이였고, 인수인계를 해줄 전임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텅 빈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며 속이 타들어 가는데, 설상가상으로 한 달 뒤 대규모 보안 감사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보안 업무의 '보' 자도 몰랐던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임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황당하리만치 차가웠습니다. "거기 책상에 보안 관련 규정집 있죠? 그거 보면 다 할 수 있어요."


야속하고 막막했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두꺼운 보안 책자를 펴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씹어 먹을 듯이 독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현장 상황과 대조해 가며 밤을 새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활자에 불과했던 책 내용이 생생한 실무로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더니, 사가 끝날 무렵엔 경찰서 전체에서 보안 업무로는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맨땅에 헤딩하며 얻어낸 지식은 철저하고 완벽하게 '제 것'이 되었습니다.


지식은 **'근육'**과 같습니다. 남이 무거운 바벨을 대신 들어주는 영상을 수백 번 본다고 내 근육이 커지지 않듯, 남이 찾아준 정답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내 지식이 되지는 않습니다. 무거운 질문을 스스로 들어 올리며 뇌의 신경망이 미세하게 찢어지고 다시 회복되는 고통스러운 '탐색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지식의 근육이 단단하게 자리 잡습니다.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에는 숱한 질문과 가설, 비교와 분석, 그리고 '틀렸다는 좌절감'이라는 맥락이 촘촘하게 동반됩니다. 남이 떠먹여 주는 설명은 '남의 언어'에 불과하지만, 헤매고 부딪히며 찾아낸 정보는 "아, 이게 이런 맥락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며 단순한 '정보'를 '이해'의 영역으로 끌어올립니다.


지식은 속도가 아니라, 그 과정에 '얼마나 깊게 관여했는가'에 따라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정답을 갈구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물으려 하지 말고, 찾으려고 노력해 봐. 스스로 찾은 답만이 온전히 네 것이 되는 거야." 이 짧은 한마디가 누군가의 생각 스위치를 다시 켜고, 진짜 성장을 시작하게 만드는 방아쇠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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