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온실 속 베테랑에서 다시 현장으로

by 오종민

경찰 조직의 시계는 상·하반기 두 번의 인사발령에 맞춰 돌아간다. 피하고 싶은 일은 더디게 올 뿐 기어코 오고야 만다고 했던가. 2024년 상반기, 장기 근무자 순환 원칙에 따라 나는 6년간 정들었던 경찰서 내근 자리를 비우고 기어이 파출소 현장으로 나가야만 했다. 2003년 임용 이래 21년. 그중 16년을 서류와 씨름하는 내근직으로 보냈으니, 나는 현장의 칼바람보다는 사무실의 온풍기에 훨씬 익숙한 '온실 속 베테랑'이었다.


발령을 한 달 앞두고 나는 깊은 '멘붕'에 빠졌다. 머릿속엔 오만가지 먹구름이 몰려왔다. '과연 내가 험한 현장에서 1인분을 해낼 수 있을까?', '후배들에게 짐이 되거나 웃음거리가 되진 않을까?', '밤을 새우는 야간 근무를 내 체력이 버텨낼까?' 그 서늘한 두려움의 밑바닥에는, 신임 순경들보다도 현장 업무를 모른다는 뼈아픈 부끄러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무거운 마음 한편에서는 미세한 설렘의 싹이 트고 있었다. 4조 2교대(주야휴비)라는 새로운 근무 체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요즘 진짜 현장에서는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는 경찰 본연의 야성이 꿈틀거린 것이다.


운명의 장난인지, 발령지는 관내에서 1년 365일 사건 사고가 가장 끊이지 않는다는 곳, 바로 '중앙지구대'였다. 두려워할 틈도 없었다. 이곳에서 멍을 때렸다간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천만다행으로 과거 인연이 있던 든든한 팀장님이 계신 2팀에 배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팀장님을 필두로 내 위로는 노련한 선임 경위 두 명, 아래로는 열정 넘치는 경사와 순경이 포진한 완벽한 6인조였다. 멤버가 이토록 훌륭하니, 이제 나만 잘하면 되는 판이었다.


나는 현장의 템포를 익히기 위해 신임 순경의 마음으로 무작정 덤벼들었다. 무전기에서 신고가 떨어지면 반사적으로 제일 먼저 순찰차로 튀어 나갔고, 서에 복귀해 상황 보고서를 쳐야 할 때면 무조건 내가 하겠다고 키보드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땀방울을 흘리며 온몸으로 부딪히다 보니, 굳어있던 현장의 감각이 스펀지처럼 빠르게 되살아났다.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나는 현장의 호흡에 완벽히 동기화되었다. 오랜만에 맛본 야간 근무의 피로도 끄떡없었다. 출근 전 몇 시간을 쉬어야 하는지, 퇴근 후 어떻게 자야 피로가 풀리는지 나름의 생존 요령도 생겼다. 무엇보다 우리 2팀의 끈끈한 전우애가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출동 벨이 울리면 우리는 한 몸처럼 움직였고, 누군가 지쳐 보일 때면 서로의 쉴 틈을 배려하며 공백을 메웠다. 그 중심에는 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을 다독이는 팀장님이 있었다.


16년 만에 마주한 현장은 내가 상상했던 두려운 전쟁터가 아니었다. 4조 2교대가 가져다준 여유로운 휴식 시간은 삶의 질을 수직 상승시켰고, 예상치 못한 워라밸은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매일 아침 옷깃을 여미며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다이내믹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시민의 일상을 지켜낼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억지로 떠밀려 온 줄 알았던 중앙지구대는, 내 경찰 인생의 후반전을 가장 역동적으로 바꿔놓은 최고의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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