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잖아

by 오박사

며칠 전 중요한 공문서를 작성한 일이 있다. 보통의 공문서는 기존에 만들어진 틀이 있어 소정의 수정 작업만 거치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날 내가 만들어야 할 문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만들어야 하는 내용이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고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져 한동안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봤다.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순서와 상관없이 생각나는 것부터 하나씩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개요부터 작성을 하는 것이 순서이나 그런 순서를 따질 정신이 없어 본문을 건드리다가 다시 서문으로 올라왔다가 후렴을 건드리는 등 마구잡이로 생각나는 것들을 하나씩 작성해 나갔다. 하루 반나절 두드려 나갈 즈음 얼추 문서의 형태가 갖춰져 있었다. 그때부턴 무엇을 더 채워 넣어야 할지가 보이면서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작성해나갔다.

결국 퇴근 무렵이 되어서 문서가 완성되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을 때의 기쁨은 맛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짜릿하다. 결국 그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일단은 맨땅에 헤딩이라도 했기 때문이다. 구조를 생각하고 내용의 완성도를 생각했다면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강의자료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구성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틀을 먼저 만들고 그 틀에 맞춰 강의 내용을 구성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 틀도 생각나지 않고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일단 무조건 생각나는 것들부터 하나씩 ppt자료로 만들어 본다. 그러다 보면 그들 사이에 연관성이 보이고 보이지 않던 틀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글쓰기도 많은 작가들이 일단 무조건 쓰라고 하지 않은가! 이 글을 쓸 때도 일단 노트북을 펼치고 한참 앉아있다가 키보드에 손을 얹고 두드리다 보니 벌써 이만큼 적어내려오고 있다. 우리가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작성해야 하는 그 무엇이 완성본이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처음 하는데 어떻게 완벽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뭐든 좋으니 일단은 만들어보고 수정하고 또 만들면 결국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전히 나는 두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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