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그 부근의 멋진 날들

서른은 혼나지 않는다

by 이용현

서른이 되면 안 혼나


학기말 시험이었다. 국어학 시험을 봐야 하는데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전 날에 과음을 했었고 책은 펼쳐보지도 않았다. 시험에 대한 예의를 하나도 갖추지 못한 채 강의실로 들어갔다.

같이 몆주 동안 술을 마신 선배들과 동기들은 나보다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수근 거렸다. 결국 나도 그들의 틈에 껴서 컨닝 페이퍼를 만들었다.


컨닝 페이퍼는 3가로 분류되었다. 아주 작은 포스트잇을 손바닥에 끼는 것과 책상 위에 힌트를 적는 것, 손바닥에 적는 것이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택했다.

시험이 시작되고 나서야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주먹을 펼 수가 없었다. 들키게 되면 혼난다는 압박감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주먹을 쥔 손은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긴장에 휩싸여 바보처럼 덜덜 떨기만 했을 뿐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그런 배짱은 없었다. 컨닝은 나쁜 것이고 정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들켰을 시에 오는 창피함을 이겨낼 방법이 나에겐 없었다. 난 제대로된 컨닝을 하지 못한 채로 학창시절을 마감했다.

어렸을 때 손바닥에 볼펜으로 낙서를 할 때 어머니에게 혼났던 적이 있었다. 손에 낙서하지마! 그 한 마디에 낙서를 하지 않았다. 혼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소모임을 마치고 2호선 이대역에서 삼성역까지 오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 핸드폰 배터리도 나갔고 가방엔 책 한권도 들어있지 않았다. 잡동사니들과 볼펜 한자루만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 발설을 하고 싶은데 쓸 곳이 없자 손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왠지 모를 희열감이 솟구쳤다.
서른을 넘으니 손바닥에 낙서를 해도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는다는 것! 나에겐 유레카와 같은 신선한 발견이었다.


손바닥을 종이 삼아 생각나는 것들을 모두 적었다. 손바닥에 낙서를 하는 행위는 이제는 누군가의 감시에서 벗어나 내 스스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 그 자체였다.

서른이 넘으면 혼나지 않는다.

공자가 논어에서 서른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다.
세상의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 서른 살.
경제적으로나 서회적으로 독립하는나이 서른 살.

스스로 뼈대를 세우고 자기 자신에 책임질 줄 아는 서른은 이제 그 누구에게도 혼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독립하는 나이 서른.

나는 이제 그 누구에게도 혼나지 않는다.


writer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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